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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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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선물 같은 72시간이 주어진다면- 박종순(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7-08-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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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남은 아빠와 아들의 일상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예쁜 유리잔처럼 빛나던 삶’이 한순간 깨져버린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남은 가족의 심정은 막막하고 황폐하다. 급기야 이들은 생업을 이어가야 할 가게도, 꿈을 위해 즐겁게 다니던 학교도 뒷전으로 팽개친 채 자신들을 혹사한다. 이들 곁으로 엄마가 다시 돌아온 72시간이 주어졌다. 이 기적 같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올해 ‘창원아동문학상’을 받은 강정연 작가의 창작동화 『분홍문의 기적』 앞부분이다. 세상에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을까. 이 죽음으로부터 철학과 종교가 탄생했으니. 그런데도 공자를 비롯하여 또 어느 누구도 죽음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임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죽음에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면, 더구나 그 죽음이 상식적으로는 상상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일로 다가온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예고되지 않은, 어쩌면 수도 없이 예고된 죽음이 아니던가. 어떤 종류의 죽음에도 우리는 당황해 이성적 대처를 못하기 일쑤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실감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우리는 이 문제에 진지하고 근본적인 대처를 해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믿었던 사람이 있고, 사회가, 정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면.

    서두에서 말했던 강정연의 동화에서는 간절하게 엄마가, 아내가 보고 싶었고 그래서 정말 간절히 원했던 이들 곁으로 엄마가 마법처럼 다시 돌아와 선물 같은 72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 아주 특별한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잔뜩 하겠지만, 이들은 같이 밥을 해 먹고, 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사 먹고 장을 보고, 잔소리하며 웃고 떠들며 얼굴을 마주 보는 일들을 하면서 사흘을 보냈다. 그야말로 소박한 일상을 한 번 잃어버린 경험을 가진 ‘분홍문 사람들’이었기에 그 시간이야말로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마지막에 다시 엄마를 떠나보내며 ‘그동안의 일이 꿈만 아니라면 다 괜찮아’라고 했던 아이의 말처럼 무엇을 사랑하며 사는 것, 그리고 치유와 회복의 시간에 삶을 사랑하고 세상을 다시 안은 이 기억이 남은 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특별히 거창한 위로와 손길이 필요한 건 아닐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심을 다하는 태도이다.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은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일 뿐이니,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고 했다.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며 남은 자의 삶을 위로하고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태도가 절실한 때다. 그것이 개인의 노력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차원으로 확장되어 사랑으로 채워줄 수 있다면, 그들이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고 살아가는 데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선물같이 주어졌던 72시간이 아빠와 아들에게 위로가 되어 다시 일상을 찾았던 것처럼.

    박종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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