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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86년생 조규홍을 말하다

책 읽어주는 홍아 (2)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 기사입력 : 2017-07-13 18: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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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가 모르는 세상이 열렸다. 그 세상은 분명 이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없는 것 취급받아왔다. 그것은 여성들의 삶이다. ‘82년생 김지영’는 이 시대 여성의 대명사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의 글에서도 1982년 출생 여아 중 가장 많은 이름이 지영이였다고 말하면서 소설은 여성의 삶을 대표하며 그리고 있다.

    난 86년생이다. 책의 주인공 김지영 씨와 4살 차이다. 크게 다른 시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내 경험에 비춰 여자에 대한 남자의 시각이 얼마나 몽매했는지 밝히고 싶다. 일종의 고해성사다. 소설의 문체를 빌려와 나를 3인칭으로 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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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년생 김지영 책 사진.

    조규홍 씨는 198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조규홍 씨는 남자 아이였지만 낯을 가리며 부끄러움이 많았다. 작은 주택 단칸방에서 살았고 동네 골목에는 비슷한 여건의 또래가 많았다. 동네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고 같은 유치원을 다녔다. 그때 남동생이 태어났고 조규홍 씨는 크면서 가정에서 여성의 삶을 알긴 어려웠다.

    조규홍 씨의 6살 때가 여자 아이와의 첫 기억이다. 당시 남자 아이들이 ‘아스케키’라는 장난을 치고 다녔다. 조규홍 씨도 호기심이 일었다. 하루는 골목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놀다가 조규홍 씨도 한 아이의 치마를 들추며 “아스케키”라고 외치고 달아났다. 여자 아이는 울며 집으로 갔고 어린 조규홍 씨는 어안이 벙벙했다. 왜냐면 누구나 다들 하던 장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애가 이 정도였다.

    조규홍 씨는 어느덧 초등학생(당시 조규홍 씨가 입학할 땐 국민학생이었다.)이 됐고 부여받은 첫 번호는 15번이었다. 여자 아이들은 번호가 30번부터 시작됐다. 뒤에 와서 이야기이지만 조규홍 씨는 30살이 되어서도 당시 여자 아이들 번호가 왜 30번부터 시작 됐었는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조규홍 씨가 11살 때 학교에 여자 아이 반장이 있었다. 조규홍 씨도 반장선거에 나갔던 터라 그 여자 아이는 조규홍 씨를 선거에서 이긴 아이였다. 조규홍 씨는 그 반장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남자 반장도 있었지만 (당시 조규홍 씨 학교에는 반장이 여러 명이었다.) 유독 그 여자 반장만 싫어했다.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 아이한테 졌고 지위가 낮다는 것이 분했나보다. 꼰대가 따로 없다.

    조규홍 씨가 중2병에 시달릴 무렵 짝사랑 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학교가 좀 떨어져 있어 조규홍 씨는 그 여학생 보다 항상 3코스 앞에서 버스를 탔다. 사람이 가득 찬 버스, 그 여학생은 언제나 표정이 안 좋았다. 인사도 하기 어려웠다. 당시 조규홍 씨는 그 여학생의 몸에 스치는 군중들의 손이 두려웠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조규홍 씨 중2 때 가정 과목에서 성교육 시간이 있었다. 수업은 지루했고 선생님은 뭔가 숨기는 모양새였다. 조규홍 씨는 수업을 듣는 대신 잠을 선택했다. 그땐 그 순간을 놓치면 성인이 될 때 까지 제대로 여자의 성을 배울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남중, 남고를 졸업한 조규홍 씨가 대학에 갔으니 얼마나 아는 게 없었을까. 무지로 인한 오해는 금방 나타났다. 대학 새내기 때 조규홍 씨는 여학우들이 점심 밥 값을 훌쩍 넘는 커피를 사마시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뻔히 다들 돈 없는 대학생이면서 뭘 그렇게 있는 척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는 남자 동기들과 술을 마시며 그런 여학우들을 ‘된장’이라고 비아냥거렸고 조규홍 씨는 그날 점심 값 다섯 배의 술값을 지불했다.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 했던가. 그건 아닌 것 같다. 2년이란 세월이 조규홍 씨를 바꿔놓았다. 우선 조규홍 씨는 전역하고 복학생이 되고서야 여성들의 정확한 생리 주기를 알게 됐다. 그리고 생리를 딱 3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과 통증이 짜증나 미칠 정도라는 것도 알게 됐다. 여자 선배들과 같이 담배를 피며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조규홍 씨는 이 대화를 시작으로 지금도 변하고 있다.

    꼰대·마초였던 내가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철학 수업에서 힌트를 얻었기 때문이다. 중세 서양 철학 ‘유명론’에서는 보편적인 것은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실제 ‘여자’는 없다. ‘여자’대신 82년생 김지영 씨 같은 각각 개인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는 ‘여자’라는 언어로만 존재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난 ‘여자’를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대신 엄마와 여자 친구, 사촌 여동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다른 여성들과의 대화에서 비슷한 사연을 듣게 되고 이해의 폭은 넓어졌다. 이번에 읽은 ‘82년생 김지영’은 여전히 ‘여자’는 모르겠지만 엄마와 여자친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여자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남성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조규홍 기자 h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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