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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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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우리나라 여행] 백령도

서해 최북단 아름다운 국경의 섬

  • 기사입력 : 2017-07-1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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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기의 역할은 떠날 용기가 없는 독자를 자극해 여행지로 떠밀어 주는 일과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당장 여행을 하고 나온 기분을 자아내게끔 하는 일도 포함한다. 여행은 언제 떠나는 것이 적절할까. 오늘이 어제와 같음을 느낀다고 꼭 여행이 필요한 시점은 아니다. 다만, 생활의 반복에서 얻을 수 있는 안정보다 새로운 일에 대한 갈증을 채워야 하는 일이 더 절실한 편이라면 내일은 조금 멀리 발을 떼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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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무진의 비경. 기암절벽은 먼 세월 거센 파도를 맞으며 빚어졌다.



    날이 갈수록 밤이 더워지고 바람은 반가워진다. 여름이 왔음을 실감한다. 여름에는 특히 더 해무가 자주 생겨 발길이 묶이는 국경의 섬 백령도. 적군과 마주한 이 국경은 우리 배 속 위와 장 같은 장기와 참 비슷하다. 평소 모르고 살다 쿡쿡 아플 때가 돼서야 둘도 없이 중요한 곳임을 체감하는 곳. 하지만 이내 잠잠해지고 마는 곳. 대한민국 서해 최북단 백령도는 연평해전과 여러 포격사건, 천안함 사건 등을 겪어내고 약 4000명의 섬사람들과 섬을 지키는 해병대 흑룡부대원들이 살고 있는 아름답고 위험한 우리 영토다. 지난해 다녀온 백령도의 여름을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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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과 백령도를 잇는 배편은 아침에 섬으로 나가는 배와 저녁에 돌아오는 배가 하루 한 번씩 운행된다. 북한과 가장 가까이 국토를 대면하고 있는 백령도는 우리나라 섬 중 8번째로 큰 섬이다. 백령도 바다에서는 볕 좋은 날 점박이물범들이 멸종위기인 줄도 모른 채, 세상모르고 헤엄쳐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북한 땅과 백령도 사이에는 심청이가 물에 빠진 인당수 바다가 놓여 있다. 전래동화 속 바다를 앞에 두고 끝섬전망대에 올랐다. 마침 날이 맑아 다행이었다. 백령도는 해무가 많이 끼는 바다라 뱃길이 수시로 막힌다. 그래서 이야기 속 심청이가 해무를 걷어내기 위해 인간 제물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마주한 황해도는 크게 소리를 지르면 들릴 만큼 가까웠고, 들린다 한들 알아듣기 힘들어진 언어의 거리가 아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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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무진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모습.



    백령도는 인천시에 소속된 섬이지만 황해도 내륙과 더 가까운 섬이다. 때문에 굴과 김치를 소로 넣어 만든 백령도 김치 떡, 일명 짠지 떡과 같은 황해도 냄새가 밴 음식이 많이 남아있다. 백령도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밑반찬으로 젓갈이 한 종류 이상은 꼭 차려져 나왔다. 낯선 젓갈 중 가장 알아차리기 쉬운 것은 역시 백령도 까나리 액젓이었다. 젓갈은 대부분 담그고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달그락거리는 감정을 혼자 추스르고, 덤덤해져서야 모습을 드러낼 기운을 내보는 젓갈은 내성적인 음식이다. 나에게 젓갈은 젓갈만으로 음식이 되기는 힘들다. 반찬으로 삼키기 많이 짠 젓갈의 불완전함과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맨밥의 싱거움이 서로를 알맞게 채운다. 그런 밥을 한 숟갈씩 넘길 때는 목뿌리부터 실룩거린다. 백령도에서 까나리 액젓은 밥과 함께 먹기보다 음식의 간을 맞출 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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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무진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모습.



    나는 까나리로 간을 맞춘 백령도 냉면을 저녁 식사로 하고, 낙조 무렵 전국 절경 사진을 모아 만든 달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무진으로 향했다. 두무진을 이루고 있는 기암절벽은 먼 세월 거센 파도를 맞으며 빚어졌다. 바다를 병풍처럼 감싸며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에 서식하는 까만 가마우지가 두무진의 비경에 보탬이 되어주고 있었다. 두무진에서 마주한 노을은 섬 깊숙이 창궐하듯 빛났다. 노을은 하루 동안의 갈등이 고요하게 분출되는 현상으로 보였다. 그때의 나는 필요 없는 감정이 너무 쌓여 있었다. 백령도 노을을 보고, 슬프고 억울한 일이 오래 고여 마음이 절벽처럼 자글자글 주름지지 않도록 순간마다 흘려보내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테두리를 벗어나 보는 시도나, 긴 시간 말없이 바다를 보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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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령도로 복귀하는 군인들.



    보통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발이 푹푹 빠진다. 그러나 백령도 사곶해변은 대형버스가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는 견고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규암 가루가 두껍게 쌓여 이뤄진 이 같은 지형은 이탈리아 나폴리 해안과 우리나라로 세계 두 곳뿐이다. 백령도 사곶해변이 더 큰 해안이다. 그 규모가 비행기 활주로로 손색없어 6·25전쟁 당시 유엔연합군 천연 비행장으로도 이용되었다. 지금은 백령도 군사기지의 비상시 활주로로 쓰이는데 아무런 손색이 없어 보였다. 살아있는 갯벌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옹진군의 잘못된 간척 사업으로 얼마 전부터 사곶 해변이 제 기능을 잃고 조금씩 악취가 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천연 비행장을 밟아보기 위해 사곶 해변을 찾는 자동차가 모래에 빠지는 등 단단했던 해안의 힘이 조금씩 빠지고 있다고 한다.

    무릇 여행이 시작되는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나는 백령도를 한국에 몇 없는 오지라고 여겼다. 오지를 다녀오면 내 삶이 좀 더 특별해질 것 같았다. 신이 남긴 마지막 작품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섬 백령도를 안보의 섬으로 만들고, 오지로 느끼게 하는 이유는 남과 북 분단국가의 경계인 탓이다. 처음 백령도를 가기로 했을 때 주위 반응은 북한의 도발 행동에 대한 안전상의 걱정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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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암 가루가 쌓여 있는 사곶해변.



    그러나 도착하고 본 섬마을 주민들은 별일 없이 여유로웠다. 분쟁지역다운 긴장을 유지했음에도 평온한 하루가 많은 섬, 백령도는 바다를 건너다 잠시 멈춘 땅이 아닐까. 앞만 보고 곧장 내달리는 방향이 가장 빠른 지름길인 바다에서 이 섬마을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여유로운 까닭은 잠시 쉬는 방식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목적을 두고 걸으면 쉽게 피곤을 느낀다. 반면에 쓸데없어도 하고 싶은 생각들을 뭉쳤다 펼쳤다 하며 마냥 걷는 길에는 지치지 않는다. 쉰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내가 쉬는 방식은 마냥 걷는 길이고 그 연장선으로 종종 여행을 다닌다. 맛있는 음식과 안락한 자리를 준비하지 않아도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뭐든 하고 싶은 일을 하염없이 할 때 우리 삶은 한층 윤택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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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백
    △ 마산 출생·경남대 재학
    △ 201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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