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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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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경남예술극단 정기공연 ‘안녕이라 말하지마’

‘늙은’ 연극배우들의 슬픈 자화상
후배·자식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 받는
나이 든 3명의 연극배우 이야기 담아

  • 기사입력 : 2017-06-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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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창원 도파니아트홀에서 배우들이 ‘안녕이라 말하지마’ 연습을 하고 있다.


    “내 딸들아, 누가 제일 나를 사랑하는가를 말해다오. 나에 대한 사랑과 효성이 지극한 딸에게 제일 큰 재산을 주겠다. 아비에 대한 사랑을 말해봐라, 어서!”

    극은 병실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 대사를 나직이 읊조리는 한 늙은 남자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한때 연극무대를 휘젓던 배우였지만 이제는 몸 반쪽이 마비돼 혼자서는 대소변 가리기도 버거운 신세다. 간신히 소변을 받아냈지만 그 통을 침대에 쏟아버리는 남자의 모습이 애처로움을 더한다.

    경남예술극단의 18번째 정기공연(창작초연) ‘안녕이라 말하지마(작 백하룡, 연출 이삼우)’는 삶이 어느 정도 시들어버린 ‘늙은이들’의 이야기다. 3명의 주인공은 모두 연극배우였지만 1명은 반신마비로 병원에 있고, 1명은 중간에 그만둔 뒤 보험을 팔고, 1명은 극단에 있긴 하지만 후배들에게 괄시당하는 존재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이들의 접점은 ‘늙음’이다. 힘없이 늙어버리자 딸들에게 버림받는 리어왕처럼 이들도 늙어서 후배, 자식들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몸이 성치 않은 성철이 고집을 부려 자신의 극장으로 돌아가 연극 리어왕을 해보려는 장면은 처연하면서도 쓸쓸하다. 갑자기 셰익스피어를 하자는 얘기에 양훈은 미쳤냐며 소리 지른 후 나가버리고 찬종은 성철의 윽박에 못 이겨 대본을 든다. “바람아 불어라, 내 뺨을 찢어라. 폭포수 같은 비바람아, 들끓어라. 쏟아져라, 억수같은 비바람아. 번개여, 나의 백발을 불태워라!” 성철은 더 제대로 하라며 다그치고, 찬종은 보험을 팔지만 마음속에는 연극에 대한 미련이 남은 복잡한 심경을 울분처럼 토해낸다. 내지르는 대사에서 그들이 늙었어도 꿈에 대한 집착,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찬종의 장례식장에서 후배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양훈은 사회에서 외면받는 ‘꼰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사건건 시키고 부려먹고 잔소리에…뭐 배울 게 있어야지.” 후배의 일갈에 양훈은 욕하며 성질을 내지만 그 대사는 자기도 모르는 새 꼰대가 돼버린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꿰뚫는다. 직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장년층이면 따끔거릴 만하다.

    연극은 그저 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직하게 끌고나간다. 특별히 시선을 끄는 무대 효과나 특수 장치는 없다. 관객들에게 그저 이들이 처한, 지금의 자화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별 다른 양념 없는 극을 받치는 것은 전적으로 세 배우의 연기다. 주인공을 맡은 세 배우 이상철(61), 김종찬(56), 천영훈(56) 모두 지역에서 뚝심 있게 연극생활을 지속해온 배우들이다. 이삼우 연출가는 “실제 선배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말했다. 주인공의 이름이 실제 배우들의 이름과 유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에서 연극배우라는 쉽지 않은 길을 오랫동안 걸어온 배우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극 속의 대사나 장면들이 뭉근하게 끓인 찌개처럼 묵직한 뒷맛을 남긴다. ‘늙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환기시키는 무대다.

    7월 3~5일 오후 7시 창원 도파니아트홀, 20~21일 오후 7시 30분 진주 현장아트홀, 23일 오후 5시, 24일 오후 7시 30분 김해 극단이루마아트홀. 예매 및 문의 ☏ 010-9020-9999. 글·사진= 김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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