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화(81·함안군 칠원읍)씨는 1936년 창녕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남편 견필수씨를 만나 결혼했다.
조국을 위해 월남전에 참전한 견씨가 큰 부상을 당해 귀국하게 됐다. 견씨는 전투 중 수류탄 파편들이 양다리에 박히면서 절단하는 수술을 했다. 남은 다리가 너무 짧아 의족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씨는 참전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남편(상이등급 1급)을 50년 간 업고 다니며 치료와 재활에 힘쓰는 등 없어선 안될 손발이 돼 줬다. 게다가 40년간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해 효부로 인정받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박씨는 고추장사 등은 물론 막일까지 하며 아들을 키웠다. 이렇게 양육해 결혼시킨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었을 때도 박씨는 남은 손녀를 위해 다시 힘을 냈다. 박씨는 미망인회 함안군지회 지도원으로 몸이 불편한 회원들에게 밑반찬·목욕 봉사를 하고, 수시로 충의공원 내 위패 봉안실을 찾아 정화활동을 한 것은 물론, ‘태극기 거리’의 더러워진 태극기를 수거해 세탁하는 등 솔선수범해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