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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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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사천 수제 기타 제작자 문찬호 씨

세상에 없는, 단 하나의 기타소리 만드는 男子
기타 제대로 알고 싶어 악기수입업 접고
2006년부터 미국 오가며 제작법 배워

  • 기사입력 : 2017-06-1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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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습도 조절이 되도록 원목으로 마감한 내벽, 톱밥과 먼지를 빨아들이는 집진기, 톱날이 있는 기계들과 사포, 조각칼들과 자, 칸이 많은 서랍장. 공간을 둘러보자니 목수의 공방에 가까웠다. 이곳의 주인도 나무를 다루니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때 이곳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인의 얼굴에 걸쳐진 안경이 눈에 들어온다. 오선지를 닮은 다리를 가진 안경, 현악기 한가운데 울림구멍 같은 동그란 테를 보아 하니 이곳의 주인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

    우리나라에 몇 없는 수제 기타를 제작하는 문찬호(47)씨의 작업장, 사천시 정동면에 있는 ‘문기타’를 찾았다.



    대학교와 악기로 유명한 낙원상가가 가까웠던 것부터가 시작이었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문씨는 대학 밴드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기타를 좀 더 가까이할 수 있었다.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시험 삼아 기타를 직접 만들어본 일도 있다. 그가 자라온 70~80년대는 반주 악기로 여겨졌던 기타가 밴드 음악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테크닉과 톤 등도 발전을 이루면서 기타리스트가 주목받는 시대였다.

    “기타가 인기 절정이었을 때니 시기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때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기타음이 따로 들리는 정도를 이야기했으니까요.”

    졸업 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어학코스를 밟고 있을 때 IMF 외환위기가 터졌고, 캐나다에서 접했던 음악들을 간직한 채 진주로 돌아와 라이브바를 차렸다. 이후 서울로 올라가 악기수입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기타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기타를 계속 판매하다 보니 제품에 대해서는 빠삭했지만 정작 기타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를 제대로 알아보겠다는 마음으로 기타 제작 교육으로 유명한 미국 갤룹스쿨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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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찬호씨가 사천시 정동면 ‘문기타’ 작업실에서 제작 중인 기타의 넥 뒤틀림을 측정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배워보니 기타가 정말 깊다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수입업과 병행할 수 없을 것 같아 2년 동안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2009년부터 유명한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제작법을 배웠습니다. 한국과 미국을 계속 오가는 생활의 연속이었죠. 그러다 어느 날 한 선생님께서 계속 배우러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 않다며 이제 직접 만들어보라고 하셨어요. 제 느낌에는 조금 모자란 듯했지만 조언을 받아들여 2011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 이곳에 자리를 잡았죠.”

    조용한 사천은 작업하기에 알맞은 곳,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러 고향 진주에서 약간 비켜나 지인이 적은 이곳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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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제 기타를 제작하는 문찬호씨./김승권 기자/


    기타는 크게 나눠도 서른 가지 이상의 공정을 거쳐야 완성되고, 한 대를 만드는 데 200시간 이상 걸린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의 기타, 특별한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드는 것. 노력이 많이 들지만 금전적 보상은 품을 들인 만큼 완전치 못하다. 이 때문에 그는 기타 제작을 주업으로 삼으면서 악기 대여와 수입악기 판매, 기타 수리 등을 함께 하고 있다. 평일 낮에도 그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이곳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살뜰히 챙겼다.

    “기타 제작만으로 먹고살긴 어렵죠. 직접 만든 기타는 값이 나가다 보니 잘 팔리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요. 또 기타 제작만을 생계수단으로 삼으면 더 오래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있어요. 원래 제작에도 시간이 많이 들고, 음악과 기타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신중하게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1년에 3~4대 정도밖에 못 만듭니다. 지금은 녹음실과 악기 창고로 쓰는 이곳에 카페도 열었는데 작업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접었어요.”

    시간의 제약이 있다 보니 2006년부터 지금껏 만든 기타가 17대 정도. 그중에서 유명한 밴드에 기타를 팔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손사래를 친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보다 기억에 남는 건 제일 처음에 만든 기타들이라며 옛 기억을 들췄다.

    2006년에 처음 미국에 가서 2개월 과정 커리큘럼에 따라 통기타 하나를 만들어 왔다. 짧은 기간에 만든 첫 기타이다 보니 관심을 두지 않다가 지인이 소리를 듣고 구매자를 소개했고, 200만원에 판매했다.

    “그해 고 김광석의 추모 앨범을 위해 여러 가수가 와서 녹음하는데, 음향 엔지니어가 여러 악기를 다 컨트롤하기 어려우니 기타 하나를 갖고 쓰자고 제안해서 다들 가져온 기타를 쳐본 후 고르기로 했대요. 그 결과 유명한 브랜드에 1000만원을 호가하는 기타들을 제치고 제가 처음 만든 그 기타로 녹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이상하기도 했죠. 별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만들었을 뿐인데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요. 왜 좋은지 알 수 없어서, 이유를 찾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첫 기타가 제대로 기타를 배우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2년 사천에 자리 잡은 후 작업실을 완성시켜 나가며 만든 두 대도 각별하다.

    “똑같은 나무를 갖고 똑같은 상황에서 내부의 메커니즘은 전혀 다르게 해서 만들어봤어요. 그래야 비교가 가능해서 데이터로 축적할 수 있으니까요. 두 스승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을 제대로 습득한 결과물이기도 해서 뜻깊죠. 지금도 여전히 자료를 쌓아나가려 2대를 동시에 만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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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제 기타를 제작하는 문찬호씨./김승권 기자/


    스승인 기타 제작자 윌리엄 검피아노가 자신에게 기타 제작을 배우러 뉴욕에 도착한 문씨를 두고 40년을 투자할 수 있겠느냐며 물었던 것을 떠올렸다. 기타는 40년쯤 해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이제 40년 중에 10년을 막 지났다. 올해부터는 서울연희실용전문학교 실용음악과 내에 만들어진 악기제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 학교 내 악기 제작과정이 만들어진 만큼 의미도 남다르다. 이제 만드는 법을 전수하는 데까지 온 그의 목표가 궁금해 물었다.

    “한 대라도 의미가 있는 기타를 만들고 싶습니다. 손으로 만들었다고 핸드메이드 기타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죠. 수제 기타란 하나밖에 없고, 원하는 소리를 내고, 고칠 수도 있는 기타예요. 어떤 유명 브랜드 소리가 나는 기타를 원한다면 흉내내지 말고 그냥 그 기타를 사면 되거든요, 제작하러 찾아오는 손님들께도 꼭 이야기합니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대부분 찾는 소리의 기타들이 시중에 나와 있어 다 들어보라 권하죠. 제가 만들 기타는 그중에서도 없는 소리, 갖고 싶은 소리, 말하자면 ‘소수가 좋아하는 소리’를 내는 겁니다.”

    그는 주제가 있는 기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고유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기타. 기타 소리는 따로 듣지 못했다. 다만 기타에 대한 애정 담긴 눈빛이 울림구멍 닮은 안경 너머로 전해졌다. 주제가 있는 기타의 선율과 울림을 어렴풋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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