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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결혼의 조건- 이문재 경제부장

  • 기사입력 : 2017-06-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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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경사회에서 결혼은 삶의 통과의례였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짝을 맞춰 혼례를 올리고, 자식을 낳고 키웠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자, 개개의 인생을 의미 있고 완성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당시 가족은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만드는 것 이외에도, 농사일을 가능하게 한 노동력의 원천이었다. 일부 양반네들이야 정략혼인이다 뭐다 해 머리를 굴렸겠지만, 민초들 대다수의 결혼과 출산은 어떤 계획에 따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재화(財貨)가 땅이 아닌 다른 곳, 이를테면 물건을 만들고 팔거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도 창출되면서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게 됐다. 가족이 농경사회 때처럼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소비자가 되고 말았다. 가족 모두가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니, 당연히 버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생겼다.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가족은 재화를 보태는 일원에서 재화를 소모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쯤 되면 결혼과 출산이 좀 꼬이기 시작한다. 누가 가족을 책임지든지 수입으로 지출이 감당되면 문제가 없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가정을 꾸리겠다는 결정은 쉽지가 않다. 혼자 버티기도 힘든 상황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온전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오늘날 아무나가 아무에게나 너무나 쉽게 내던지는 ‘결혼 해야지’라는 멘트는 덕담일 수도 있지만, 무책임한 말이 될 수도 있다.

    ▼한 조사에서 미혼남성 중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결혼의향이 높은 것으로, 정규직이 78%, 비정규직은 69%로 나타났다. 미혼여성의 경우도 비슷했다. 고용 안정성이 결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방증이다. 일자리는 단순한 생존의 단계가 아니라 결혼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출생 등 여러 문제와 결부된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규직화 만들기가 이런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혼하고 싶은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한다.

    이문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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