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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촉망받던 마필관리사의 죽음- 양영석(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7-06-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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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렛츠런파크 부산경남(부산경남경마공원) 내 마방 앞에서 30대 마필관리사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고교 시절 태권도 선수, 대학 때는 운동학을 전공하며 딴 물리치료사 자격증과 스포츠마사지사 자격증을 활용해 2004년부터 마필관리사로 일하면서 ‘말 마사지’라는 자신만의 전문영역을 개척해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해외연수도 갈 정도로 촉망받는 마필관리사였던 A씨가 쌍둥이 자녀와 아내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뭘까. A씨의 숙소에서는 ‘×같은 마사회’로 시작되는 3줄짜리 짧은 유서가 발견됐다. 목숨을 끊기 열흘 전에는 마사회의 노동문제에 관심을 보인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마필관리사의 처우 개선 문제를 놓고 전화상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필관리사는 경마장에서 말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먹이 주기, 목욕, 청소, 발굽 관리 등을 담당한다. 경주 전 말의 약물검사와 장구 착용 상태 확인, 경주 후 마사지와 목욕 등도 마필관리사의 일이다. 마사회는 조교사·마필관리사에게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다. 마사회는 조교사에게 면허를 교부하고 마방을 임대하지만 조교사는 개인사업자다. 마필관리사는 마사회가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일을 하지만 직접적인 고용계약을 맺지 않는다. 마필관리사의 고용주는 조교사다. 1993년 개인마주제 시행 이후 마주는 조교사에게 경주마를 위탁하고 조교사가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마필 관리업무는 마사회의 주요한 업무이자 상시업무지만 변형된 간접고용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 과천에 있는 서울경마장은 조교사협회와 마필관리사노조가 단체협약을 맺지만 부산경남경마장은 조교사와 마필관리사가 개별 근로계약을 맺는다. 따라서 마필관리사는 기본급과 야간경마수당·당직수당은 받을 수 있지만 이보다 더 큰 성과급은 조교사가 마음대로 배분할 수 있다. 조교사 말 한마디에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성과급 배분에 불만이 있어도 감히 항의할 수 없다. 연매출 7조7000억원의 한국마사회 정규직 직원들의 평균연봉은 9500만원이다. 정규직 4명 중 1명꼴로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신의 직장’이다. 그러나 같은 경마장 안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직원의 연봉은 1600만원에서 4400만원 사이다. 그런데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의 마필관리사 280여명은 이러한 비정규직에도 끼지 못한다.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에서 마필관리사·기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개장 이후 벌써 4번째다. 2011년 11월에는 경주의 한 모텔에서 당시 부산경남경마공원 마필관리사 B씨가 과도한 업무량 등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숨졌다. 그는 유서에서 ‘한 달에 12번 밤샘 숙직을 서기도 했다. 말을 타다 떨어져 골절과 뇌진탕을 당해도 해고의 위험 때문에 치료도 못 받았다. 사생활이 전혀 없고 교도소에서 사역하는 기분이었다’고 밝혔다.

    경마장에서 가장 고되고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고용불안을 느껴야 했던 A씨는 사람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경주마들에게 ‘네가 나보다 낫다’라고 신세 타령을 했을는지도 모른다.

    양영석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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