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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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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블루스 시즌3-나의 이름은 청춘] 유리공예가 함리경 씨

좋아하는 유리에 찍었죠, 내 인생의 쉼표

  • 기사입력 : 2017-05-2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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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이 제가 만든 유리공예 작품을 예뻐해 주시고, 저는 만드는 게 재밌어요.”

    단지 그뿐이라고 했다. 보통의 청춘들 같지 않게 이색적인 일을 시작한 이유가 말이다.

    공식 데뷔 1년이 막 넘은 유리공예가 함리경(29·여)씨 얘기다.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시작에 앞서 양해를 구했다. “4월에 받은 캔들홀더 주문이 꽉 밀려 있어서 혹시 테이프 좀 감으면서 해도 될까요?” “당연히 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리경씨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생각해온 질문보다는 그건 뭐하는 과정이냐는 말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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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공예가 함리경씨가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의 작업실에서 자신이 만든 유리공예 작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유리와 유리 혹은 유리와 장식 등을 이어 붙이기 위해서는 납땜을 해야 해서 동테이프를 붙이는 거예요.”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유리가 얼마나 바쁜지를 보여줬다. 실제로 하루에 꽤 많은 시간을 작품 제작에 쓰고 있지만 이제야 4월치 주문을 소화 중이다.

    SNS상에서도 이미 유명해서 주문이 물밀듯 밀려드는 터라 ‘만난 김에 하나 사와야겠다’며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려던 기자의 생각은 수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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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경씨가 재밌어서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은 운좋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이제는 돈도 조금씩 벌고 있다. “바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 스트레스는 없어요.”

    무대미술을 전공했지만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소품부터 무대 전체를 구성하는 일은 가히 막노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쉼표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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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년 전 20대 중반에 부모님이 계신 창원으로 무작정 내려왔어요. 무엇이라도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이었고 좋아하는 미술 분야로 여러 가지를 해봤어요.”

    북아트, 구두디자인, 한복디자인 등 손을 안 댄 것이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과정이었지만 무작정 놀기는 그래서 미술 홈스쿨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다 2014년 유리와 만났다.

    “재밌더라구요. 제대로 해볼 생각이 들었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서울에 40년간 유리공예를 하신 전문가 선생님이 계시더라구요. 그때부터 매주 주말 서울행이었습니다.”

    주중엔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엔 선생님께 배우면서 그렇게 1년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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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서기가 가능해진 지난해 초, 묵묵히 지켜만 보던 부모님도 입을 열었다.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이후 용호동에 작업실을 구했습니다.”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탓에 거침 없이 앞으로 나갔지만 취미로 시작한 일이었다. 캔들홀더, 스테인드글라스, 선캐처 등 생각나는 대로 도안을 만들고 제작했다. 예쁘게 사진을 찍어 SNS에도 올렸다. 지인들은 예쁘다며 주문을 의뢰했다. “딱 그 정도였어요. 아는 사람들이 몇 개 의뢰하면 만들고…. 작품을 만들어 친구들과 마켓에 참여하는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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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좋게 기회가 왔다고 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은 리경씨였다. 프랑스 자수를 하는 친구와 작업실 근처 카페에서 작업하던 중에 친구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게임회사 넥슨이었다. 게임 ‘메이플스토리’ 캐릭터를 자수작품으로 만들어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 게임 전시회 G-STAR에서 팔아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친구는 앞의 리경씨를 보곤 유리공예도 있다고 제안했다. 넥슨의 대답은 “좋다”였다.

    “한 100개 넘게 만들어 갔는데 품절이었어요. 친구랑 그날 같이 있지 않았다면 없을 기회였죠.” 이후에도 리경씨는 취미활동을 해나갔다. 생각한 대로 작품을 만들고 친구와 마켓에 나가는 일상이 반복됐다. 또 우연히 리경씨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벚꽃썬캐쳐가 알려질 기회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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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진해군항제 시즌에 진해의 한 꽃집에서 벚꽃 모양의 선캐처 몇 개를 제작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더니 모바일상에서 약 300개의 주문이 몰려 왔어요. 거의 두 달을 해서 완성했어요. 혼자서 감당이 안 될 정도였거든요.”

    간단해 보여도 작업은 복잡하다. “도안을 그리고, 도구로 유리를 자릅니다. 동테이프를 바르고 인두로 납땜을 한 뒤 말리면 끝입니다. 생각보다 작업이 많아요.” 재료인 색유리는 국내 생산이 없어서 미국, 중국에서 수입된다. 장당 10만원쯤 하는 판유리를 수요에 맞추려면 300만원치는 사둬야 한다. 크리스탈, 종 같은 부재료는 서울 동대문에 가서 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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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리경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선캐처부터 보석함, 캔들홀더, 스테인드글라스, 거울 등 시간과 정성을 들이니 1만원부터 30만원까지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비싸면 안 팔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의외의 답이 왔다.

    “사실 판다는 생각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 강해요. 열기가 언제 사그라들지 모르니 수입도 고정적이지 않고 불안정하죠. 하지만 돈과 연계시키면 너무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요.” 리경씨는 친구들과 자신을 생각하면 각자의 삶이 다른 것일 뿐 어느 것이 더 잘했다 못했다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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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는 꿈도 이 일을 시작한 이유처럼 그렇다 할 만한 것이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카페를 내볼까 해요. 물론 은행의 힘을 빌려야 하겠지만, 이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 다른 수단으로 돈은 벌어야겠다 싶어요.” 원데이 혹은 정규수업도 진행한다. 2월에 시작한 원데이 클래스는 벌써 누적인원 300명에 가깝고, 업으로 하기 위한 정규수업은 5명이 수강 중이다. 인기는 전국으로 퍼져 4월에는 판교 카카오 오피스에서 원데이 클래스 강의를 하고 왔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에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으면 하는 거죠. 행복하니까요. 더 열심히 해서 전망 좋은 어느 곳 유리창이 큰 작업실에서 햇빛 받으며 유리를 자르는 게 하고 싶네요.”

    글= 김현미 기자

    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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