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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 산퇴양절(山頹梁折) - 태산이 무너지고 마룻대가 부러지다. 큰 학자가 세상을 떠나다

  • 기사입력 : 2017-05-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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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자(孔子)가 세상을 떠나기 7일 전 새벽에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고 거닐면서, “태산(泰山)이 무너지는구나! 마룻대가 부러지는구나! 현철한 사람이 시드는구나!”라고 하더니, 과연 7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태산은 중국에서 높은 산은 아니라도 오악(五岳) 가운데 하나인데, 중국 사람들은 중국의 머리로 친다. 그래서 황제가 친히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등 가장 존중되는 산이다.

    마룻대는 한옥의 중앙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나무다. 서까래가 거기에 걸려 힘을 받는다. 한옥에 쓰이는 많은 목재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나무다.

    후세에 와서 위대한 학자나 스승의 죽음이 손실이 큰 것을 비유하여, “태산이 무너지고 마룻대가 부러졌다”라고 표현했다. 퇴계 선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 선조 임금이 내린 사제문(賜祭文)에서 이 표현을 썼다.

    지난 5월 12일, 한학자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이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한학자이고, 전형적인 선비다.

    1925년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만든 신식학교에는 다니지 않고 21세 때까지 가정에서 한학을 익혔다. 1945년 이후로 밀양중학교, 부산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동아대학교 교수를 거쳐 1961년부터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부임해 국사학, 국문학, 한문학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쳤다. 고려시대사와 실학 연구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장, 대학원장, 역사학회 회장, 한국실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학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벽사 선생은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과 함께 신식 학교를 안 다니고 한문공부만 해 가지고 해방 뒤 대학교수가 돼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을 한 보기 드문 이력을 가진 학자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이력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전통학문이 해방 이후 대학에 계승되는 성공적인 사례이다. 대부분의 대단한 한학자들은 해방 이후 대학에서 자기 학문을 전승시키지 못하고 시골의 이름 없는 선비로 매몰되고 말았음을 생각할 때, 두 분이 대학에서 활동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학문으로 볼 적에도 대단히 다행한 일이었다.

    이는 성균관대학교 초대총장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의 선견지명 덕분이다. 심산 선생은 신식학교의 학벌이 없는 벽사와 연민 두 청년 학자에게 대학에 적을 둘 것을 권유해 두 분은 신식학교를 다니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에 입학하게 됐고, 나중에 박사까지 받았다. 이 두 분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전통학문이 오늘날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山 : 뫼 산. *頹 : 무너질 퇴.

    *梁 : 대들보 량. *折 : 부러질 절.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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