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생활 속의 풍수지리] 흙이 고운 쪽을 쫓아가라

  • 기사입력 : 2017-04-28 07:00:00
  •   
  • 메인이미지


    산청군 신안면에 있는 도천서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7호)은 조선시대의 사설 교육기관이자 선현(先賢)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1363년(공민왕 12년)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文益漸·1329~1398) 선생의 공적을 후세에 알리고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461년(세조 7년)에 건립한 서원으로 1554년(명종 9년)에 왕으로부터 ‘도천(道川)’이라는 편액(偏額·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을 받았다.

    도천서원은 사당과 강당, 바깥 출입문을 일직선으로 배치해, 앞에는 교육 영역을 두고 뒤에는 제례의 영역을 뒀다. 앞쪽의 중앙 강당은 유생의 교육, 회합 및 토론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중앙 강당의 동·서쪽에 위치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는 유생들이 공부하며 거처하는 곳이었다. 또한 선생의 묘에서 250m 정도 떨어진 서원은 묘의 우측 산(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을 ‘주산’으로 해 그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주산은 ‘병풍을 펼친 듯한 형상(병풍산)’으로 이런 산은 부(富)의 축적과 올곧은 성품의 인물을 나게 한다. 터의 기운이 좋은 반면 바깥 출입문과 중앙 강당이 일직선으로 돼 있어 ‘직충살’로 인한 생기의 흩어짐이 있으므로 사이에 비보의 일환으로 흙을 쌓아서 원형 정원을 조성했으면 더욱 좋았겠다. 서원의 방향은 남향(子坐午向)으로 묘의 좌측 산(좌청룡)이 안산(案山·앞산)인데, 안산의 형상과 높이가 적당해 서원을 향해 부는 흉풍을 막아주고 있었다.

    문익점 선생의 묘(경상남도 기념물 제66호)는 비(碑)와 좌우의 문인석(文人石), 망주석(望柱石), 석등(石燈)이 고려시대 묘제(墓制) 연구에 좋은 자료로 쓰이고 있다. 주산에서 뻗어 내려온 용맥(龍脈)은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있었다. 하지만 좌·우측의 계곡은 협소해 당판(堂板·묘와 그 주변)과 균형이 맞지 않으며 좌청룡과 우백호는 그런대로 갖췄으나 안산은 너무 멀리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묘를 향해 앞에서 부는 흉풍을 안산이 막지 못하지만 묘 앞의 중앙에 석등을 둠으로써 석물에 의한 비보를 했다. 좌향은 서향인 묘좌유향(卯坐酉向)이었다.

    산청군 신등면 모처에 화장(火葬) 후 평장(平葬·봉분을 만들지 않고 평평하게 매장함)을 하기 위한 땅(다랑논)을 감정한 적이 있다. 산줄기가 직각으로 꺾어져 내려왔지만, 생기가 뭉쳐지지 않은 약룡(弱龍)이어서 매장을 하기보다 ‘화장을 한 평장’이나 ‘자연장’에 맞는 터였으며, 전원주택 부지로도 알맞은 곳이었다. 터는 마을과 약간 떨어진 곳으로서 마을 입구인 ‘수구(水口)’는 폭이 좁고 매서운 바람도 없으며 마을 안의 생기가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사행로(蛇行路·길이 구불구불 휜 상태의 지형)와 사행천(곡류) 형태여서 생기가 가득한 마을이었는데, 주민의 말에 의하면 예상한 대로 작은 마을임에도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됐다고 한다. 대체로 수구가 작으면서 조롱박 형상의 지세로 산천이 수려한 곳은 인구수에 비해 다른 마을보다 월등히 많은 인재가 나옴을 현장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아무튼 측정 결과, 좌측 산과 우측 산은 환포(서로 둘러 쌈)를 하고 있고 앞에 있는 안산은 유정하여 터의 기운을 좋게 했다. 그러나 음택(陰宅·무덤)보다 양택(陽宅·산 사람이 활동하거나 거주하는 곳)의 용도에 더 적합한 터였다.

    함안 모처에서 현재 거주하는 집을 매도하고 살던 집보다 뒤쪽에 있는 터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살던 집보다 뒤쪽으로 가면 ‘흉사가 생긴다’라는 말을 듣고 감정을 요청했다. 의미 없는 관습들 중의 하나이지만, 살던 집의 뒤쪽으로 가면 산과 더 가까워지므로 혹여 계곡의 연장선이거나 날카로운 암반으로 인해 흉할 수 있으나 만일 ‘터의 기운’이 좋다면 전혀 상관없다. 의뢰인의 터는 전에 살던 곳의 터보다 좋았으며, 마을 전체에 생기가 모이는 길한 지역으로 집을 지어 살면 기쁜 일과 행운이 많이 생기는 자리였다. 터를 조사할 경우에 어느 방향으로 갈수록 토질이 더 좋은지를 유심히 살펴서 그 지점에 집을 지으면 된다. 이것을 고언에 ‘천광종토정(穿壙從土精·땅을 팔 때 흙이 고운 쪽을 쫓아가라)’이라 한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