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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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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5) 마산 경석전파전기사

“고장난 추억, 쌩쌩 돌아가게 해드립니다”

  • 기사입력 : 2017-03-16 22:00:00
  •   
  • 마산어시장 청과시장 인근
    전선·공구로 꽉 찬 가게 안엔
    수십년된 가전제품들로 빽빽

    60여년 경력 80대 주인장
    오래된 가전제품들 고쳐줘
    골동품 라디오 수백대 손보기도

    값싼 중국제품 쏟아지는 요즘
    낡은 물건·오래된 물건
    쉽게 버리는 세태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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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어시장 청과시장 인근에 36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석전파전기사’ 앞에 오래된 가전제품들이 쌓여 있다.

    박찬호와 김광석, 순돌이의 공통점은 아버지가 ‘전파사’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요즘 세대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예전엔 동네마다 전파사가 성업했다. 지지직거리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멈춰버린 시계와 먹통이 된 전화기 등 가전제품의 종합병원 노릇을 하던 전파사는 꼭 필요한 가게였다. 세월이 흘러 전자회사 서비스센터가 자리 잡으면서 만물박사, 맥가이버로 불리던 전파사 아저씨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전파사가 몽땅 없어지기 전에 시간과 추억이 머문 가게를 찾아 그간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어시장 7길에 있는 ‘경석전파전기사’는 화려한 백화점과 정비된 청과시장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전파사 양옆으로 상회와 쌀집, 소금집, 식당들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데, 떨어지고 지워진 간판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향수를, 젊은 세대에겐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해 보인다. 골목 전체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해 마치 1970~1980년대를 다룬 드라마 세트장에 온 듯했다.

    전파사는 한눈에도 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음을 짐작케 하는 외관을 지니고 있다. 상아색으로 페인트 칠한 건물은 곳곳에 칠이 벗겨졌고, 간판은 요즘엔 보기 드문 한자로 ‘京碩電波電氣社’라고 쓰여 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십상인 곳이지만,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와 쌓여 있는 오래된 가전제품이 발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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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장 오경석씨가 고장난 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가게 앞에는 볼록하게 튀어나온 텔레비전과 덩치 큰 라디오, 레버로 돌려 쓰던 전자레인지가 무질서하게 놓여 있다. 세월이 쌓여 있는 외관은 선뜻 발을 떼기 쉽지 않게 했다. 그 틈새를 비집고 문을 열면 4~5평 남짓한 공간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부품과 전선, 공구가 꽉 차 있다. 선반에는 박물관이나 골동품 가게에서 봄직한 수십 년 전 제품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고 작업장 안은 수리 공간과 손님용 의자 두세 개로 채워져 있었다. 벽에는 매직으로 쓴 듯한 주거래 은행계좌와 식당, 상회 전화번호가 곳곳에 적혀 있고 한가운데 있는 연탄 난로가 가게를 데우고 있었다.

    경석전파전기사 주인장인 오경석(83·본명 오달석)씨는 이 자리에서 36년째 전파사를 꾸리고 있다. 그는 60여년 경력을 자랑하며 스스로 ‘전파사 1세대’라고 불렀다. 전파사를 업으로 삼게 된 계기를 묻자 ‘가난해서’라는 답이 바로 나왔다.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난 오 사장은 한국에 오자마자 6·25전쟁을 겪어야 했단다. 열여섯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 열심히 일했지만 고생에 비해 벌이가 시원찮았다.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열여덟 살부터 전파사에 직공으로 취직한 뒤 잔일을 도우며 눈동냥 귀동냥으로 배워 본인의 가게를 꾸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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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석전파전기사 앞에 옛 가전제품들이 쌓여 있다.


    오 사장은 그때를 회상하며 “따로 학원에 다닐 형편이 못 됐어요. 자격증 같은 것도 없었고요. 대신 그때는 젊었으니 낮밤 없이 일본어로 된 기술책을 보면서 공부했어요. 2~3년쯤 그렇게 공부하니 그 당시에 나오는 가전제품 치고 못 고치는 제품이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선 잘하는 기술자라고 소문도 좀 났죠”라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국회의원 선거용 앰프를 직접 제작해 지프차에 매달아주기도 하고 수출자유지역이 생겼을 때 회사를 다니면서 말썽인 기계들을 손보기도 했다. 쌀 한 말이 1000~2000원일 때 전축 한 대가 8~9만원씩이었으니 수입이 괜찮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어시장으로 진출했다. 당시 인기드라마 속 직업으로 등장할 만큼 전파사는 호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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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 창고에 쌓여 있는 고장난 제품들.


    오 사장은 “예전엔 전파사도 경기가 좋았지. 여기와 가까운 3·15의거탑 주변에 전파사가 즐비했어요. 잘나갈 땐 마산 창원 합쳐서 500개쯤 있었죠. 가게마다 쌓여 있는 전자제품도 많았고요. 근데 지금은 마산 창원에 50군데도 채 안 될 겁니다”고 회고했다. 대기업들이 서비스센터를 운영하고, 중국산 값싼 제품이 쏟아지면서 전파사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아날로그 기기는 제품을 뜯은 뒤 문제가 생긴 부품을 갈아끼우면 되지만, 디지털 기기는 대부분 고장난 키판을 통째로 바꿔야 해 수리비가 많이 드니 고쳐 쓰기보다는 새 제품을 사는 걸 선호하게 된 것도 큰 요인이다.

    그는 “장사 한창 잘될 때는 하루에 수십 대 넘게 들어왔는데 요즘은 공치는 날이 다반사입니다. 10원을 못 벌어도 앉아 있는 거죠. 돈이 안 되고 나이도 있으니까 애들도 집에서 편하게 쉬라고 하지만 노는 것보다 나으니까 문을 열어요. 무엇보다 손님이 찾아왔다 허탕치면 안 되니까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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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만큼 단골도 많겠다고 묻자 어깨를 으쓱하며 30년 단골들이 종종 선풍기, 녹음기, 안마기를 고치러 온다고 했다. 에어컨, 냉장고는 힘에 부쳐서 안 받고 스마트폰과 신형 텔레비전은 컴퓨터용 납땜 부품이 많아 못 고친단다. 대신 고칠 수 있는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악착같이 쓸 수 있게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 못 고친다고 하면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입도 찾는 이도 예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믿고 물건을 맡기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라디오 수집가로 이름난 김호준 전 마산예총 회장도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라디오에 문제가 생기면 오 사장을 찾는 단골이다. 그가 갖고 온 골동품 라디오 몇백 점을 얼추 다 손봐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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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 안 선반에 재활용 부품들이 가득하다.


    취재를 위해 처음 가게를 찾은 날 그는 무엇을 고치러 왔느냐고 묻기 전에 일단 자리에 앉으라며 난로 옆 따뜻한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는 세상 사는 이야기, 날씨 이야기 등 일상을 편하게 나눴다. 두 번째 가게를 찾은 날도 취재를 하는 내내 수시로 드나드는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전파사 기능은 줄었지만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이곳은 물건만 고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주는 아날로그 감성이 짙게 묻어 있는 공간이었다.

    한자리에서 무던하고 뚝심 있게 버텨온 노신사는 쉽게 버려지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이 어디 있나요? 요즘 사람들은 물건이 고장 나거나 외관이 식상해지면 버리기 일쑤거든요. 그게 안됐지. 오래된 물건이야말로 앤티크 아니겠어요?”

    집에 고장 난 물건이 있으면 창고에 두지 말고 고치러 가보자. 우리 동네 맥가이버인 전파사 아저씨가 쌩쌩 돌아가게 고쳐줄 테니.

    글= 정민주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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