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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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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122) 산청 (11) 삼장면 반공용사위령탑 ~ 지리산 내원사

화마상처 남은 절터엔 아픔의 흔적 고스란히

  • 기사입력 : 2017-01-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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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정유년 새해가 어김없이 밝아왔다. 누구나 새해에는 항상 새로운 각오로 다짐을 하고 마음에 소망을 담아 희망의 꿈을 그린다. 그러나 분에 넘치는 부질없는 탐욕과 욕심을 담은 희망은 허망한 꿈이 된다. 작은 꿈을 담은 소망을 이루고자 하면 정직한 마음으로 노력하고 진솔한 땀을 흘려야 한다.

    올해는 작지만 소중한 꿈을 실현하고 싶다. 이런저런 이유로 삶에 쫓긴다고 연락을 하지 못했던 지인이나 옛 동료들에게 안부라도 물어야겠다. 가끔 주변사람들의 부음 소식을 듣고 달려가 영정 속의 고인을 만나면 회한이 앞섰던 적이 있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야 자연의 순리이기는 하나 속절없는 세월이 그런 생각을 들게 했다. 우리 땅 이곳저곳을 다니면서도 많은 인연을 만났다.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찾아가 보면 그사이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세월은 어느 것도 그대로 놔두는 법이 없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식사라도 나누는 정이 한겨울 추위를 녹이는 따뜻한 마음이다. 이번 주말에 은퇴 후 고성에서 시골집을 구입해서 근사하게 고쳐 살고 있는 친구부부와 점심 약속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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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무열왕의 후손인 무염국사가 창건한 내원사. 500여 년 전 화재로 소실돼 방치됐다가 1959년경 중건됐다.

    반공용사위령탑·대포리삼층석탑

    삼장면 송정숲에서 군도 59번 도로를 따라 덕천강과 함께 오다 후천 삼거리에서 덕산대포길로 접어들면 도로변에 반공용사위령탑이 있다. 언젠가 우리문화유산 정기 답사기행 길에 박춘영(83) 회원께서 우리 후손들은 곳곳에 세워진 전적비와 위령탑을 보며 선조들이 전쟁만 했을 것이라 해서 웃었던 적이 있었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오석에 새겨진 글을 보니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자락에 숨어든 적들과 싸우다 숨진 인근 마을 사람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위령탑이다. 이 땅에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잠시 묵념을 하고 대포숲을 지나 내원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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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포리삼층석탑 절터

    내원사는 몇 번 답사를 했으나 인근 깊은 산속에 있다는 보물 제1114호 대포리삼층석탑은 답사하지 못했다. 안내판이 없어 대포리 마을에서 길 가던 노인에게 탑의 위치를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며 극구 말렸다. 볼 것도 없지만 길이 험해서 위험하다고 했다. 그럴수록 탑을 만나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지리산 삼장천을 따라가다 보면 금포정교가 나오고 건너편에는 펜션이 몇 채 있다. 다리를 건너 펜션 사이 좁은 마을길을 지나면 이내 가파른 언덕으로 희미한 산길이 이어진다. 또 작은 계곡을 가르는 다리를 건너면 약초를 재배하는 곳이니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표지판이 있다.

    안내판을 지나 1㎞쯤 가파른 비포장 험한 자갈길을 따라 오르면 절터로 추정되는 평평한 곳에 민가가 한 채 있었다. 장독대도 있었으나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오래됐다. 인근에는 수련원 같은 목조건물을 짓고 있었다. 대포리삼층석탑은 민가 위쪽 높은 곳 평평한 곳에 보일 듯 말 듯 긴 세월을 버티고 서 있었다. 산 중턱 절터에 서니 남쪽이 훤히 터졌고 넓어 한눈에 명당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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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포리삼층석탑

    탑은 도굴과 파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수도승들이 마셨을 샘에서 목을 축이고 탑 주위를 돌아보았다. 주변은 정리가 잘 돼 있어 보물급 문화재 대우를 받고 있었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이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쌓았으나 1층에 비해 2·3층은 확 줄어들어 비례로 보면 원래의 몸돌이 아닌 것으로 추정됐다. 지붕의 처마는 수평을 이루고 있고, 처마 끝은 파손이 심하나 꺾인 모습이다. 탑의 상륜부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부서진 석재는 어디로 간 것일까! 문화재 도굴범들이 파손한 것을 다시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사리장치가 있던 1층 몸돌은 물론이고 파손된 것을 억지로 맞춰 놓아 원형의 형태를 많이 잃어버렸다. 문화재 도굴범을 문화재보호위원으로라도 임명(!)해야 우리 것을 귀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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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포리삼층석탑 석등받침

    1970년대 산행을 즐겨하던 때 교통편이나 잠자리를 구하는 것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그 시절 등산을 하다 날이 저물면 천막을 치고 야영을 하는 최적의 장소는 물이 있고 양지 바른 절터였다. 절터에는 절의 규모만큼 물이 있다. 절집의 규모가 커지면서 절 샘물로는 부족해서 외부에서 물을 끌어오는 곳이 있다. 인간의 탐욕이고 욕심이지 자연이 주는 순리는 아니다. 절의 이름조차 알 길이 없는 대포리삼층석탑 절터에서 깨진 탑의 잔해를 보니 문화재가 부서지고 사라진 것은 자연적인 것보다 인위적인 요인이 더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지리산 자락 바람과 물소리만 스쳐가는 고요한 산속에서 잠시 홀로 수도승이 돼 보았다. 오랜 세월을 버티고 선 대포리삼층석탑과 말하지 않는 대화를 나눴다. 이 깊은 산속에서 불국토의 이상을 실현하려 망치와 정으로 돌을 두드리고 다듬었던 사람들의 체취가 전해져 온다. 텅빈 절터에 쓸쓸히 홀로 남아 사람들에게 입은 상처를 안고 찾아온 이들을 어루만져 줘 상처를 아물게 해줬을 대포리삼층석탑을 두고 텅빈 길을 따라 내원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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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원사

    내원자동차야영장·지리산 내원사

    삼장천 금포정교를 건너 내원사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한적한 풍경 속의 내원자동차야영장이 있다. 내원자동차야영장은 지리산을 찾는 야영객들의 안전한 캠핑문화와 자연보호를 위해 10년 전에 일반야영장을 혼합형으로 조성했다. 자동차야영장은 53면으로 부대시설이 가깝고 편의시설이 잘 마련돼 있어 여름 성수기에는 인기가 높다. 자동차야영장을 지나면 일반 야영장이 이어져 있다. 동절기에는 야영장 모두 문을 닫고 휴장을 했지만 여름에는 인파로 북적댄다. 야영장을 지나면 지척에 내원사가 있다. 내원사가 자리 잡고 있는 위치가 지리산 주능선 써리봉과 무제치기 폭포에서 발원한 내원천과 수십리 삼장천이 만나는 아우라지에 있다. 내원천의 발원지 써리봉은 농기구 써레에서 변형돼 봉우리가 써레의 뾰족한 살을 닮아 붙여졌다고 했다. 무제치기 폭포의 무제치기도 폭포가 3단이라 스스로 무지개를 치는 폭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정감이 가는 고운 우리말이다.

    내원사로 들어가려면 내원천 방향은 다리를 두 번 건너야 하고 삼장천 방향에서 가도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가 내원사의 일주문 역할을 한다. 내원사의 지리적 위치는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철통같은 요새이다. 내원사의 옛 이름은 덕산사였다. 신라 최고의 귀족 출신인 무열왕의 후손인 무염국사(801~888)가 창건했다. 내원사는 500여 년 전 화재로 소실돼 방치돼 있다가 1959년께 중건됐다. 내원리 방향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부드러운 마사토가 깔린 절집 마당이다. 내원사에는 암자가 여럿 있었다. 내원천을 따라 내원리로 가는 길에 금장암과 해회암이 왼쪽에 있었고 오른쪽에는 석상암, 백왕암, 도솔암, 내완암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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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내원사 비로전에는 귀중한 문화유산 국보 제233-1호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 이 비로자나불상은 납석사리호의 명문에 의하면 766년(혜공왕 2)에 법승과 법연 두 승려가 죽은 두온애랑 소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해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함께 석남암사 관음암에 봉안했다. 이 불상은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것 중에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지권인’(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모습) 비로자나불상으로서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지권인의 수인을 한 여래(부처를 높여 부르는 말)형의 비로자나불 형식이 766년에 정립됐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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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원사삼층석탑

    보물 제1113호 내원사삼층석탑은 대웅전 옆에 서 있다. 2단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서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긴 것이 뚜렷하게 보이지만 옛날 화마로 인해서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다. 지붕돌은 얇고 평평하며 밑면의 받침을 4단씩 뒀다.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치켜올려져 있는 느낌이다. 탑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대포리삼층석탑을 닮은 모습이다.

    (마산대 입학부처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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