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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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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벽화 그리는 박상근 화가

“옆길로 샜다고요? 벽화는 화실 밖 캔버스에 그린 작품이죠”

  • 기사입력 : 2016-10-2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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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근(54)은 화가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1980년대 초부터 그룹과 초대전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2011년부터 벽화에 눈을 돌렸다. 소위 순수미술 ‘주류’에서 보면 ‘옆길’이다. 폄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낡은 도시에 새 옷을 입히고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자부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품도 꽤 있다. 대표작이 마산 성호동 ‘가고파꼬부랑길 벽화마을’이다. 최근 진해 ‘속천항 나가야 길 벽화마을’에도 손이 닿았다. 주민 감사패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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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근 화가가 자신이 그린 창원시 진해구 속천항 나가야 길 벽화마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입시학원 25년= 가난했다. 대학진학은 꿈도 못 꿀 형편이었다. 그림이 좋았던 그는 경남대 미술교육과에 원서를 넣었다. 부모와 상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학비조달을 위해 교내 근로장학생을 신청했다. 오전에 일찍 등교해 잡초를 제거하는 등 노동을 대가로 학비 전액을 면제받았다. 오후에는 입시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친구들은 예술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며 “위선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주린 배를 채우고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이렇게 시작한 학원생활이 직업이 됐다. 대학 졸업 후 1987년부터 약 25년간 진해와 마산 등지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하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이 겹쳐 결국 문을 닫았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소속 만화 애니메이션 문화예술 강사가 됐다. 창원 통영 함안 지역 초·중고교를 찾아다니며 강의를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따리장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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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근 화가 대표작 ‘마산 성호동 가고파꼬부랑길’


    ◇ 마산 진전초등학교 벽화= 벽화를 시작한 건 우연한 기회였다. 2011년 강의를 하던 마산 진전초등학교에서다. 학교측에서 벽화를 그려줄 수 있는지 제의했다. 전교생 99명의 장래희망을 캐리커처 형식으로 표현했다. 그가 그린 밑그림에 학생들이 본인 얼굴에 직접 페인트로 색칠했다. 스쿨버스 운전기사가 꿈인 학생은 노란 버스 속에서 환하게 웃었다.

    다음 해 신입생 6명이 입학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 다음 해에는 5명이 들어왔다. 그때마다 박상근은 달려갔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은 그가 붓을 들고 화실 밖으로 나오는 계기가 됐다.

    자괴감도 없지 않았다.

    “벽화 그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인식입니다. 순수미술에 비해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엔 무덤덤하던 이들도 완성된 작품을 보고서야 깍듯이 저를 대했습니다. 결과물 수준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았죠. 단순히 일당 받는 벽화공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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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근 화가가 자신이 그린 창원시 진해구 속천항 나가야 길 벽화마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 20여 곳 벽화 작업 참여= 그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약 25곳의 벽화작업에 참여했다.

    널리 알려진 2013년 마산 성호동 가고파꼬부랑길 벽화마을 총괄기획자로 이름을 올렸다. 약 3개월 정도 미술협회 소속 작가들이 재능기부 형태로 완성했다. 달동네라는 인식이 강했던 곳의 경관과 이미지를 바꿨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마을 일대 오래된 골목길 주택가 벽화작업도 했다. 그를 비롯한 내서문화포럼 회원들이 무료 재능기부 봉사로 추진했다.

    이 밖에도 △주남 오네또 테마파크 일러스트 △진주 지수 초등학교 캐릭터 △창원 도민의 집 옹벽 ‘행복이 머무는 포토존’ △창원 반송동 일동아파트 △사천 초양도 벽화마을 조성 △창원 반송초 외벽 (창원의 사계절 일러스트벽화)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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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 속천항 벽화 조성 전(위)과 후

    ◇ 진해 속천항 벽화마을, 주민 감사패= 그는 지난 17일 진해 ‘속천항 나가야 길 벽화마을’을 찾았다. 이 사업은 아름다운 속천항과 환경스토리가 있는 ‘태평동 으뜸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마을 입구부터 550m에 이르는 벽화거리를 조성했다.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여름을 보낸 곳이다. 7월 말부터 한 달 보름간 땀을 쏟았다. 섭씨 40도에 육박한 폭염에다 종일 해풍을 맞고 나면 일을 마칠 때쯤 몸은 소금에 절었다.

    당초 한 달을 계획했는데 일정이 길어졌다. 마을 안쪽도 그려달라는 등 주민 요구가 이어졌다. 횟집 간판 글씨도 썼다. 마을 경로당으로 사용하는 컨테이너 박스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학과 소나무를 그렸다. 잠수부 일을 하는 집주인은 담벼락에 ‘머구리’와 ‘돌고래’를 꼭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일부 구간은 ‘맞춤형 벽화’가 탄생했다.

    “안녕하세요?” 수족관을 청소하던 횟집 여주인이 반갑게 그를 맞는다. 다른 가게 주인도 “어쩐 일이냐”며 환대한다.

    지나던 차량 한 대가 멈춘다. 강구욱 동장이다. 벽화마을 소문을 듣고 벤치마킹하러 온 이들에게 소개하는 중이란다. 이 벽화를 그린 화가라며 박상근을 소개한다. “빈집도 있었고 회색빛 담벼락이 을씨년스러웠는데 마을이 확 바뀌었지요. 주말과 휴일이면 입소문 듣고 오는 관광객도 계속 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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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 속천항 벽화 조성 전(위)과 후

    ◇벽화작업은 스토리텔링= 박상근의 벽화작업은 스토리텔링이다. 캔버스인 마을을 며칠 동안 답사한다. 동네 역사도 공부한다. 주민 얼굴도 살핀다. 생뚱맞은 그림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한다는 소신이다. 마을 입구부터 걸어 가면서 이야기가 연결되도록 구상한다. 특히 기존 조형물을 최대한 활용한다. 집 밖으로 튀어나온 난로연통은 소나무 가지가 되고 물 배수구는 갈매기 입이 된다.

    벽화라고 하면 으레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으로 꽃이나 나무를 그려놓고, 무심히 지나던 주민이 그저 “아! 예쁘다”라고 말하는 게 싫었다.

    ‘고집’ 덕분인지 차츰 그의 작품을 알아보고 의뢰하는 이들까지 생겼다. 지난해부터는 관공서 등에서 꾸준한 요청이 있다.

    그에게 벽화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물었다.

    “벽화는 딜레마”라는 답이 돌아왔다.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저는 전문작가입니다. 벽화는 상업적이라는 데 고민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우습지요. 벽화도 밖으로 나온 입체적 환경의 캔버스에 작품을 담는 것인데 말입니다. 하나의 미술 장르로서 사랑받고 매력을 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상권 기자 s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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