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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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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발달장애인 사회복지사 강호진씨

장애인의 눈으로 보면 자립의 길은 더 가깝습니다
성장이 더뎠던 5살 아이 자폐성장애 진단 받아
가슴아픈 학창시절 겪고 창신대 사회복지과 졸업

  • 기사입력 : 2016-02-1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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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내 발달장애인 1만6000여명. 학교를 졸업한 성인 발달장애인은 대부분 취업을 못하고 집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사회복지사 일을 하는 한 발달장애인을 통해 그의 고난과 희망, 성장을 들여다본다.
     
    취재는 지난 3일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에 있는 창원시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이뤄졌다.
     
    인터뷰는 같은 사무실에 있는 김정일 느티나무경남장애인부모회 사무국장과 느티나무경남장애인가족지원센터 서은경 센터장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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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달장애인 사회복지사 강호진씨가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 창원시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 준비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따돌림 폭력…지우고 싶은 학창시절

    창원시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강호진(29)씨는 자폐성장애 3급의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는 인지기능에 제한이 있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말한다. 기자가 사무실에 들러 강씨를 찾자 그는 커피를 타 내느라 분주하다. 손님 응대를 많이 해본 솜씨다.

    강씨의 부모는 그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이 늦다고만 생각했지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섯 살 되던 해, 유치원 교사가 또래 아이들하고 조금 다른 것 같다며 병원을 권했고, 결국 자폐성장애 진단을 받았다. 자폐성장애는 다른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는 물론 같이 있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소통이 힘들다.

    강씨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수조차 혼자 할 수 없어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에게 학창시절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정도로 아프다. 중학교 때 친구들의 집요한 따돌림과 폭력으로 극심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어느 날 옷을 갈아입히다 우연히 상처를 본 어머니는 학교폭력의 사실을 알고는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가족지원센터와 연을 맺다

    강씨는 경남전자고를 거쳐 창신대 사회복지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취업하기는 쉽지 않았다.

    발달장애인은 성인기의 문제가 더 크다. 제도권 교육이 끝나면 주로 집에서 머물거나 생활시설에 보내진다. 집안에만 갇혀 지내면서 소외감, 우울증 등으로 장애가 더 심해진다. 시설에 보내지더라도 가족과 분리되는 데서 오는 불안감 등으로 역시 마찬가지다. 이로 인한 가족의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게 서은경 센터장의 설명이다.

    2009년 5월 강씨 어머니가 찾은 곳이 느티나무경남장애인부모회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소한 일이라도 하면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를 원했다. 장애인부모회나 가족지원센터의 궁극적인 목표는 발달장애인의 독립생활이기에 그를 받아들였다.

    엄격한 출퇴근 시간 등 직장생활의 규칙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도우미의 조력을 받아 문서 수발 등을 했다. 하지만 어떤 날은 2시간을 하고 그만두기도 했다. 특히 그는 안전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해 위험에 노출되기를 꺼렸다. 칼을 잡아도 장갑을 낄 정도였다. 한 달쯤 지나면서 변화가 생겼다. 도우미에게 “그렇게 하면 간섭이다”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도 남들처럼 오후 6시까지 근무하겠다고 했다. 두 달 만에 도우미 없이 홀로 섰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강씨가 무단횡단을 한 것이다. 서 센터장은 이를 엄청난 발전이라고 설명했다. “호진이처럼 지나칠 정도로 안전에 민감했던 사람이 융통성이 생겼다는 것이고, 급할 때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 몰입도가 올라가고 일에 대한 자신감이 늘었으며, 직원들과의 관계도 눈에 띄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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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진씨가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에서 소감문 자료를 나눠주고 있다.


    ◆장애인자립지원센터 팀장이 되다

    2013년 10월 전국 최초로 창원시의 지원을 받아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창원시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 센터는 발달장애인이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자립을 지원하는 선진형 모델이다. 이곳에는 비장애인 조력자 1명과 발달장애인 4명이 근무하고 있다. 호진씨는 그동안의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의 직책을 맡아 본격적인 사회복지사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창원시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는 토론회, 동료상담, 영상교육, 리더양성교육, 미디어교육, 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트리고 있다. 인터뷰를 한 날은 오후 3시부터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강씨는 토론회 30분 전부터 회의실 난방, 간식 준비, 출석부 및 소감문 용지·필기구 챙기기 등 사전준비를 했다. 드디어 발달장애인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애인 차별을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발표를 시키고, 용지에 기록하도록 했다. 비장애인의 눈으로 보면 서툴지만 발달장애인의 눈높이에서 이뤄지는 대화라 공감이 더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이 끝나면 소감문을 모으고, 회의실을 정리한다.

    그는 일선학교에 장애인 인식개선교육과 함께 각종 지역축제에 인식개선 홍보캠페인도 나간다. 차별사례가 있으면 주의를 주고 고발도 한다. 이외에도 장애인 관련기사를 검색해 카페에 올리는 일을 한다. 각종 서류 파일 정리, 소식지를 만드는 것도 강씨 몫이다. 경남발달장애인협회 회원을 관리하고 후원도 받는다.

    ◆“내 꿈은 여행가이드”

    직장생활을 하면서 장애를 많이 극복했다는 게 강씨를 지켜본 주변 사람의 얘기다. 자신이 번 돈으로 친척들에게 밥도 사준다. 장애인 자조모임을 만들어 같이 영화을 보고 외식도 한다. 자신들이 직접 비행기좌석을 예매해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대회인 피플퍼스트 국내외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괜찮아, 이 정도면 됐어, 잘했어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요. 하지만 똑바로 못해, 이게 뭐고, 왜 이렇게 했나 하면 다니기 힘들어요. 구체적으로 물어보라고 해놓고는 물어보면 짜증을 냅니다.” 사무실에서 예전에 불편했던 상사와의 얘기도 털어놓는다.

    강씨는 길을 기억하고 찾아가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 지리를 익히는 데 능숙하다. 한 번 간 곳을 절대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여행가이드를 해보고 싶다며 속내를 보인다.

    “호진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봅니다.” 서은경 센터장은 말했다. “비록 비장애인들과의 경쟁에서는 부족할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들의 눈높이에서만 바라봐 준다면, 우리 사회가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정책적으로 확대시켜준다면, 발달장애인에게 전 생애에 걸쳐 복지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것보다 오히려 비용을 줄이고 세금을 거둘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학수 기자 leeh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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