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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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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거제 대정유자농장 대표 천만복씨

37년 유자 사랑에 빠진 ‘거제유자 지킴이’
건과류 도매상하던 1997년 거제에 유자 사러 갔다가
유자농장 인수하게 되면서 거제유자와 첫 인연

  • 기사입력 : 2016-01-2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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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과일품평회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거제산 유자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으나 가격이 폭락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지난25일 거제시 사등면 천곡리 대정유자농장 내 유자청 판매장에서 만난 천만복(68) 전 거제유자연구회 및 거제유자조합 회장은 책임이 막중했던 수장의 자리에서 물러난 지 5~6년이 지났으나 자나깨나 유자가격 하락이 걱정이다.

    1980~1990년대 중반까지 1㎏당 7000원까지 했던 유자 가격이 2000년대 초반부터 1㎏당 500원까지 폭락했기 때문이다.

    당시 거제를 비롯한 통영, 고흥군 등의 농민들은 가격 유지를 위해 유자나무를 베어내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가격이 계속 폭락하면서 일부 농민들은 유자밭을 갈아엎고 다른 품종으로 전환, 거제 관내 재배농가도 600여 농가에서 300여 농가로 줄었다.

    그는 농민들이 땀 흘려 생산한 유자가 홍수 출하로 헐값에 팔려나가야 하는 것을 막아보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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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만복 거제 대정유자농원 대표가 가공공장에서 만든 유자 관련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처음 시도한 일이 15년 전 대정유자농장(2만3100㎡) 내 유자나무 일부를 베어낸 자리에 5억여원을 들여 생과를 1~2개월 보관할 수 있는 냉장창고(330여㎡) 신축이다.

    그는 유자 특성상 홍수 출하가 불가피한 현실을 극복하는 방안은 농민들이 생산한 유자의 신선도 유지가 최우선이라 생각했다.

    다음으로는 장기간(1~2년) 보관 및 판매를 하려면 유자청으로 만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매년 11월 중순에서 12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유자청 작업은 수작업으로 세척 후 생과 껍질을 벗겨내 썰어 설탕을 첨가하는 것으로 매일 50여명의 인력이 필요했다.

    유자가격은 계속 폭락한 반면, 인건비는 늘어나자 지난 2003년 하루 10t의 생과를 작업할 수 있는 400여㎡ 규모의 유자청 가공공장을 건립하는 데 10억여원을 투입했다.

    “유자는 수확하면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 그는 유자청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즙과 씨앗 활용 방안도 찾았다.

    (사)거제유자조합을 결성한 후 회원들과 공무원 등이 참석해 2003년 겨울 일본에 유자가공공장 및 판매장을 찾았을 때다.

    당시 일본에는 유자 하나로 유자비누, 향수, 식초, 엑기스 등 34가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목격한 그는 거제로 돌아온 즉시 무역회사를 통해 일본 수출을 타진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가공된 생즙과 씨앗만 수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연간 10여t을 수출하게 됐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2004년 유자재배농가 지인 10여명과 함께 거제유자연구회도 결성했다.

    거제유자연구회 회원 6명은 1인당 2억원씩 투자해 경남대학교 식품공학과에 비타민C가 풍부한 유자성분 분석과 제품개발 용역을 의뢰했다.

    경남대학교 측으로부터 주스를 비롯한 유자 식초, 엑기스 등 유자제품에 관한 자료를 넘겨 받은 2006년부터 시 농업개발센터의 협조를 받아 공장을 만들고 제품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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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만복 대표가 유자나무 가지를 손질하고 있다.

    힘차게 출발한 공장 가동은 불과 3년 만에 대기업들의 유사제품 출하로 판로가 막혀 12억원의 손실을 보고 생산을 중단했다.

    이후 전국에 ‘유기농붐’이 크게 일자, 회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친환경 고품질 유자 생산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일일이 농가를 돌아보고 농지에서 반경 50여m 이상 떨어진 재배농장을 우선적으로 선별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유자나무의 상단부를 잘라내 2m 이하로 수고(樹高)를 낮추고 친환경 밑거름 주기 등 3년간 기술력을 농가에 지원하고 전량 수매했다.

    그렇게 수확한 연간 300여t의 친환경유자에 거제시브랜드를 붙여 유자청 판매에 나서자 유기농 붐을 타고 판매가 순탄했다.

    폭락한 유자 가격도 서서히 회복돼 2007년 이후부터 1㎏당 2000원 선을 넘어 2200원까지 오르면서 농가들에게 희망을 줬다.

    특히 그는 2008년에는 시와 국내 굴지의 화장품 회사인 A사가 개발한 기능성 화장품인 ‘유향’ 출시에도 적극 나서 판매에 박차를 가했다.

    유향의 주 원료가 유자 씨앗이기 때문에 상당량의 소비를 기대했으나, 이마저도 3년여 만에 출시가 중단됐다.

    그는 농민들이 가져다 주는 유자 물량 소비를 위해 자신의 농장 규모도 40%가량 줄였다.

    지난해에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거제(1000여t)를 비롯한 고흥 등 남해안에서는 사상 최대치인 유자가 수확됐다.

    “지난해 연말 수확한 유자를 가공하기 위해 1t포터 트럭에 싣고 왔던 유자 300여t이 2~3일 만에 높은 기온 때문에 생즙이 폐수로 흘러내려 동네 주민들에게 항의를 받았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보다도 1년 내내 고생을 하며 유자를 수확한 농민들의 눈물과 손실이 무엇보다 가슴 아프게 와닿는다”고 말했다.

    사상 최대 수확량으로 유자 가격이 1㎏당 2000원대에서 지난해에 다시 1500원으로 하락했다.

    천만복 대표는 “연간 거제에서만 1000여t의 유자가 한꺼번에 출하되고 있다”며 “안정적인 유자 가공을 위해 최소 1일 30t 이상 처리 규모의 가공공장 설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4개 식품업체를 통해 중국 등지로 수출할 길이 열려 있다”면서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유자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시나 농협, 정부 등의 가공공장 건립에 큰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천 대표는 지난 1997년에 서울에서 건과류 도매상을 하면서 지인과 함께 거제에 유자를 사러 왔다가 지금의 대정유자농장을 인수하면서 37년간 유자와 농가의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거제유자연구회와 유자향수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글·사진= 이회근 기자 leeh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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