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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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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예절 교육에 힘쓰는 심동섭 진주향교 전교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건 ‘올바른 인성’입니다

  • 기사입력 : 2016-01-0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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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아직도 그 위용을 뽐내는 진주향교에서 심동섭(71) 전교(典敎)를 만났다.

    심 전교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근면과 성실, 신의를 좌우명으로 삼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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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자신이 원장을 맡고 있는 진주시충효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항상 이 점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각자의 위치에서 직업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신의를 잃으면 그 어떤 일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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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동섭 전교가 진주향교에서 학생들에게 예절교육을 하고 있다.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만학도’ 되다

    심 전교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산청군 단성면이 고향인 심 전교는 귀한 아들로 태어났단다. 자신의 선친과 숙부가 똑같이 딸만 여섯을 뒀다. 두 집에서 딸만 열둘을 낳고 뒤늦게 태어났으니 얼마나 귀한 아들이었겠는가. 70여년 전 당시는 대를 잇지 못하면 칠거지악에 해당돼 쫓겨 나던 시절이니 말이다.

    하지만 금쪽같은 아들이었던 심 전교도 부모 밑에서 학업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중학생이던 당시 물레방앗간을 하던 아버지가 몸져 누우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고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대신 조혼을 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지인의 소개로 건설회사에 들어가 현장에서 인부로 뛰며 현장감독, 현장소장까지 50세가 넘도록 건설현장에 몸담았고, 잠시 개인택시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심 전교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배움에 대한 욕망에 항상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마음으로 살아왔다”며 “나이가 들면 포기가 될 줄 알았는데 학교에 가고 싶은 욕망은 지울 수가 없었다”며 만학도가 된 배경을 설명했다.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40대에 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후 아들 딸 4남매 모두 대학 공부를 시킨 뒤인 50대 중반에 전문대를 거쳐 지금의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학사모를 썼다. 배움의 갈망은 그를 예순이 넘어 경상대학교 대학원에 입학시킨다.

    “나이가 들어 공부하려고 하니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특히 대학원 과정은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하는 심 전교는 석사과정을 마치는 데 5년이 걸렸다.

    그는 “전공 시험 때 옆 학우의 답안지를 한두 문제 본 것이 적발돼 영점 처리된 적도 있고, 한문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어려운데 교수님들이 나이 많다고 조금의 사정도 봐주지 않아 때로는 가혹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며 “그래도 그때 그런 교육과정을 거친 것이 지나고 보니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심 전교는 “가장 용기를 준 사람은 아내이다. 만약 아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배움의 길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준 자신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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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동섭 전교가 예절교육 강의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도회와의 첫 인연

    심 전교의 경우 성균관유도회 진주지부 사무국장에서 바로 진주향교의 수장인 전교로 임명됐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또한 보통 70대 후반이나 80대의 나이에 맡는 전교를 70대 초반에 맡게 됐다.

    심 전교가 향교에 몸담게 된 것은 40대에 청송 심씨 진주종회 총무를 맡으면서다. 당시 타 성씨들 대부분이 향교 출입을 하는데 자신의 집안에는 아무도 없어 ‘나라도 다녀야겠다’는 심정으로 향교에 찾아가 청년유도회에 가입을 했단다. 그때만 해도 향교는 아무나 다닐 수 없는 문턱이 높은 곳이었다. 이름 있는 가문만 출입하는 시대였던 만큼 하나의 자랑거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배워야 하겠다는 열망을 갖는 계기도 됐다고 한다.

    “이때부터 운이 좋아선지 인덕이 있는 것인지, 어른들이 모두 좋아하시고 사랑으로 지도해 주셔서 향교 생활이 아주 순탄했다”고 회고하는 심 전교는 최연소 장의(掌議)를 거쳐 그 어려운 성균관 전학, 전의에 추천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차츰 보폭을 넓히면서 2년간의 유도회 사무국장, 6년간의 진주충효교육원 사무국장을 맡아 오다 지난해 3월, 3년 임기의 진주향교 전교에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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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반 수강생들이 체험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활발한 예절교육·인문학 강의

    경상대 대학원 한문학과를 졸업한 것이 바탕이 돼 중고등학생 인성교육 강사를 비롯, 진주시내 4개 노인대학, 도교육청 산하 학생교육원 등에 출강하면서 인문학의 근본인 인간의 도리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진주시민 명예기자, 성균관 유교신문 경남주재기자를 하면서 일간지 필진과 유교신문, 주간지 등에 300여 편의 칼럼을 쓰며, 300여 페이지 분량의 에세이집 6권을 출간해 나이를 잊게 하는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심 전교는 “나를 포함해 향교에 몸담고 있는 인사들 모두가 서구문화의 무분별한 도입으로 우리 고유문화가 차츰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전통문화의 발굴, 재현, 전승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향교의 큰 행사인 춘추 석전(제례)을 비롯해 전통 성년례, 전통 혼례, 기로연, 향음주례, 조선시대 과거시험 재현(진주목 향시), 전국한문경전 성독대회 등 전국 규모의 큰 행사를 연중 재현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심 전교는 “요즘 학교 교육이 입시 위주에 치우쳐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올바른 인성의 형성이나 예의·도덕교육이 부족하다고 본다”며 “이런 이유로 오늘날 청소년 학교폭력 문제나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향교에서라도 학생 인성교육에 더욱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향교 내에 설립된 진주시 충효교육원은 60여개 유치원을 대상으로 기초예절을, 초중고 학생은 기초예절, 인성교육, 전통예절을 연중 무휴로 교육하고 있다. 공군교육사령부 장병, 진해 해군사관학교, 해군교육사령부 등에서 수시로 교육을 하고 있고, 일반 유림은 매월 선비반 강좌, 시민들에게는 경서반 강좌를 펼쳐 연간 1만여명이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다.

    심 전교는 “향교가 더 이상 옛 전통과 관습에만 얽매이지 않고, 현대인들이 살아가면서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만 알기 쉽게 전수하려고 한다”며 “향교 교육을 받는 대상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 매우 고무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그는 “향교는 시민들의 것이며 절대로 문턱이 높지 않은 곳이다”며 “향교에서 개설한 모든 강좌를 무료로 들을 수 있고 전통혼례 등 시설도 개방하고 있으니 많은 이용을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강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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