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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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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창원서 구두 닦아 나눔실천 정헌일씨

“한달에 구두 600켤레 닦아 100켤레 값은 기부해요”
친구들 학교 갈 때 시작한 머슴생활 6년
현대차서 능력 인정, 반장 제의 받았으나 한글 몰라 자진 퇴사

  • 기사입력 : 2015-08-2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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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두에 반짝반짝 광을 내면서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 있다. 시커면 구두약을 하루 종일 손에 묻히고도 깨끗하게 변한 구두를 보면서 미소 짓는 사람. 굴곡진 삶을 살다가 마지막 천직에 충실하려 빛바랜 구두를 찾아다니며 “구두 닦으세요”를 외치는 남자.

    바로 창원, 마산, 진해 일대에서 구두 닦는 일을 하는 정헌일(57)씨의 이야기이다.

    창원 도계동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정 씨는 자신을 위해, 남을 위해 기부를 많이 한다. 비록 넉넉지 않지만 자신의 어려웠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남을 돕고 있단다.

    하루 종일 구두를 닦아 모은 돈의 일부를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고 있는 정씨의 일상을 쫓아가봤다.

    ▲저의 기부로 우리 가정 화목했으면…

    정씨가 구두를 닦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인 2005년부터이다. 머슴살이, 노동자, 광부, 염전일, 엿장수, 목수일을 거쳐 구두닦이까지 왔단다.

    그는 “이제 구두닦는 일을 마지막 직업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목수일을 하다 일감이 없어 호구지책으로 구두를 닦기 시작했는데,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는 창원, 마산, 진해지역 관공서에서는 제법 유명한 구두닦이 사장이다.

    그의 주 거래처는 경남도청, 도의회를 비롯, 경남경찰청, 창원중부서, 마산동부서, 창원서부서, 김해서부서, 진해서 등 창원권 주요 경찰관서, 창원소방서, 경남농협, 산림조합, 창원보건소, KBS창원방송총국 등이다.

    그는 요일마다 출장지역을 정해 주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구두를 닦는다.

    그가 한 달에 닦는 구두는 대략 600여 켤레. 한 켤레 닦는 가격이 3000원이니 한 달에 180만원 버는 셈이다.

    그런 그는 매달 100켤레에 해당하는 30만원을 기부한다. 수입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30만원은 어쩌면 저축으로 큰돈을 만들 수 있는 액수지만 그는 기부를 선택했다.

    그의 기부는 구두 닦는 일과 동시에 시작됐다.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부산 둘하나봉사단에 고정적으로 기부하고 있으며, 연말 불우이웃돕기·이재민돕기 등 전국의 굵직한 모금운동에도 빠짐없이 참여한다.

    빠듯한 살림살이지만 그가 기부를 즐겨하는 것은 자신의 가정에 화평을 기원하기 위해서란다. 자신만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기보다 남을 도우면서 살면 언젠가 그 선행이 자신의 가정을 지켜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 그런 믿음이 정씨를 착실한 기부실천자로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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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에서 구두를 닦아 나눔을 실천하는 정헌일씨./전강용 기자/

    ▲머슴→광부→엿장수→목수→구두닦이, 그래도 행복해요!

    정씨의 일생은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 ‘덕수씨의 고단한 삶’에 못지않다. 정씨는 피란과 월남전 참전을 겪지 않았을 뿐 덕수씨만큼 고단한 삶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4남1녀 중 쌍둥이 막내로 태어난 정씨는 어머니의 젖을 쌍둥이 형에게 빼앗겨 늘 영양실조였다. 그런 그의 아버지는 그가 두 살 때 별세했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가족을 해체하는 결단을 내렸다. 어머니는 잘 먹지 못해 가장 약골인 정씨만 등에 엎고 나머지 아들과 딸은 입양과 친척집 등지로 보내 버렸다. 혼자 어머니를 독차지한 정씨는 어머니의 젖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그때부터 아이다운 얼굴을 되찾을 수 있었다.

    8살 때는 머슴살이도 했다.

    친구들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남의 집 머슴으로 들어가 소 꼴 먹이고, 풀 베고, 여물 끓이고, 나무하고, 청소하고, 심부름하고…

    친구들이 국민학교 졸업하던 그때 정씨는 머슴살이를 그만뒀고, 14살 때는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판금 일을 시작했다.

    좋은 직장에서 10년 동안 일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반장직’을 제의받았지만 한글을 몰라 더 이상 진급하지 못하고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방황이 찾아왔다. 국민학교 근처도 가보지 못한 그는 “나는 왜 공부를 하지 못했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모든 것을 자포자기했다.

    방황은 오래 가지 못했다. 퇴사 1년 뒤인 25살 때 불현듯 앞으로 먹고살 일에 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충남 대천에 있던 탄광. 광부가 되려는 52명의 동기생들은 하루 교육을 받고 이튿날 막장으로 들어갔다 나왔는데, 40명이 도망을 갔단다. 100여m 갱도에서 점심을 먹고,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그는 어린시절부터 겪었던 시련과 좌절을 떠올리며 막장일을 참아냈다.

    10년쯤 했을까? 막장일을 힘들어하던 차에 마침 광산도 폐쇄돼 탄광을 떠났다. 그 후 인천에서 분식집을 차렸고, 또 창원 구 상남 재래시장에서 손칼국수와 만두집을 하다 상남시장 현대화사업에서 상가를 배정받지 못해 분식집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엿장수일 3년, 목수일도 10년간 한 뒤 지금의 구두 닦는 일을 마지막 천직으로 여기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어린시절 꿈이 무엇이었느냐는 물음에 “가정 꾸려 잘 사는 것이 꿈”이라며 “지금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저에게 구두 맡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정씨는 구두닦는 일을 앞으로 10년 더, 아니 기운이 있을 때까지 하겠단다. 기부도 마찬가지로.

    “나같이 고생한 사람, 못사는 사람도 기부에 보탬이 된다고 하니 즐거울 뿐이다”는 정씨는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을 위해 기부에 참여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 그는 “구두 닦는 사람도 기부를 하는데, 많이 버는 사람은 더 많이 기부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 사람들도 그 사람의 입장이 있으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구두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구두가 자신의 얼굴이라는 옛말이 있다”며 “가죽으로 된 구두는 기름을 칠하지 않으면 금방 마모되기 때문에 1주일에 한 번, 한 달에 4번(1만2000원) 정도 닦는 게 수명 연장에 좋고, 신사·숙녀다운 품격을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취재 말미에 정씨는 지면을 빌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저에게 구두를 닦는 도청·도의회·경찰·소방 공무원님들, 그리고 많은 손님 여러분들,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와 저의 가족들 지원해 주시고, 또 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기부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정성껏 구두를 닦아 기분이 좋아지고, 발걸음이 가볍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조윤제 기자 ch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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