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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집밥과 경상도 남자- 박익열(경남과학기술대 교양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15-07-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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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대한민국은 집밥(집에서 먹는 밥)과 셰프(Chef: 전문요리사), 요리에 열광하고 있다. 아마도 충청도 출신의 요리 연구가이자 기업 대표인 ‘백종원’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의 인기를 반영하듯 요리 관련 방송이 수십 개로 늘어났음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실감하고 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요리 광풍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젊은 층에서 그것도 요리와 담을 쌓았던 남자들이 요리 학원에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있다니 너도 나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경상도 남자들은 퇴근 후 집에서 딱 세 마디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는? 밥도! 자자!”라는 말이다. 해석하지 않아도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아이들은 뭐하느냐?, 배고프니까 밥 달라, 볼일 다 봤으면 잠자자’라는 말이다. 무뚝뚝함의 극치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 무뚝뚝함이 경상도 남자의, 사나이의 ‘매력’이고 절제된 ‘정’이고 넘치는 ‘박력’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과연 집밥과 셰프가 유행하고 있는 지금도 무뚝뚝함이 매력이고 정이고 박력으로 생각되는지 의문이다.

    방송에서 집밥 백종원은 요리를 잘한다. 꾸밈이 없다. 거기다 유머스럽게 말도 다정다감히 하는지라 같은 남자도 반할 정도다. 상황이 이럴 즈음이면 더 이상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로 살아가기가 어려워졌음을 공감할 것이다.

    며칠 전 아내로부터 대판 타박을 들었다. 밖에 나가서는 남들에게 실컷 잘하면서 집에서는 무뚝뚝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신경질을 낸다는 것이다. 특히 남들 얘기는 잘 들어주면서 자기 얘기는 잘 들어주지 않는다는 타박이다. 결론적으로 ‘당신도 영락없는 경상도 남자’라는 것이다.

    그 순간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타고난 경상도 남자인지라 얼굴이 찡그려졌다. 전라도 표현으로 좀 거시기 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 몇 가지 생각을 해봤다.

    먼저 남자로서의 생각이다. 더 이상 무뚝뚝함이 경상도 남자의 표상(表象)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무뚝뚝함과 과묵함은 서로 다르다. 아끼되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면서 살아보자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이 가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다정다감하게 표현해보자. 강한 것보다는 부드럽고 강단 있는 남자가 더 매력적일 것이다.

    다음은 남편으로서 생각이다. 부부가 되어 산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성장 배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을 같이 맞추고 살려니 더 힘든 것이다. 아내와 남편은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생각과 행동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다른 얘기를 들어주거나 차이를 좁히려 노력하면 더 오래 같이 갈 수 있다. 또한 예로부터 ‘남자는 부엌을 드나들면 안 된다’라는 나름의 성역할이 있어 왔다. 그렇지만 집밥과 셰프가 유행인 지금에 와서도 남자가 부엌을 멀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리할 때 옆에서 간단한 설거지를 해주거나 반찬을 다듬어주면 그렇게 좋아한다. 참 간단하다. 더 잘하고 싶다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요리 한두 개쯤은 할 수 있어야 어디 가서도 대접받는다. 굳이 학원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 앱(App)에 들어가면 거의 모든 요리의 레시피(recipe)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아빠로서의 생각이다. 아무래도 대화가 부족했다. 짐작건대 경상도 남자치고 대화 부족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공부, 친구, 꿈이든 먼저 다가가야 말문이 열릴 것이다.

    앞으로 주말 한 끼 정도는 남자들이 요리해서 가족 간 대화와 행복의 장(場)을 만들자고 외치면 경상도에서 ‘공공의 적’이 될지 은근히 걱정이다.

    박익열 (경남과학기술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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