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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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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상대를 인정하는 어느 버스기사님의 방정식- 정종효(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 기사입력 : 2015-06-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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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가까이 된 애마가 말썽을 자주 일으켜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많다. 얼마 전 오랜만에 부산에서 일을 보고 창원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출발부터 탑승자가 그리 많지 않아 한산하고 조용했다.

    그런데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바로 직전 승차장에서 여고생 열댓 명 정도가 우르르 버스에 오르더니 버스 뒤쪽으로 몰려 좌석을 가득 채웠다.

    가방을 메고 손에는 종이 마리를 들고, 아마도 어떤 대회에 참가했다가 마치고 학교나 집으로 가는 고등학생들임을 알 수 있었다.

    조용했던 버스는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한 시간 정도 거리가 꽤 길게 느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탔던 다른 탑승객들도 여고생들을 쳐다보는 눈빛이 조금은 불쾌하고 걱정되는 눈치였다.

    으레 이럴 때는 연세 지긋한 분이 호통을 치거나 기사님이 룸미러를 통해 쳐다보며 따끔하게 한마디를 던지는 악역을 하는 장면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기억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시대적 관념과 상식들이 세대 차의 이해방식과 갈등으로 무너지고 있고, 불쾌한 상황이 있어도 누구나 이야기를 쉽게 꺼내기가 무서운 세상이라는 의식 사이의 충돌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순간의 상황과 더불어 갑자기 복잡해진 생각이 맴도는 와중에 마지막 탑승자가 버스에 탑승하자 버스 문이 닫히는가 싶더니 버스기사님이 일어섰다.

    복도 맨 앞에서 뒤를 향해 서서 여고생들을 쳐다보는 순간 왠지 긴장했다. 무슨 말을 던질까 싶더니….

    “자 예쁜 공주님들, 지금부터 고속도로에 진입합니다. 벨트 꼭 매야 하는 거 잘 알고 있죠? 그리고 조용히 합니다. 그래야 이 아저씨가 운전에 집중해서 할 수 있고, 다들 안전하게 갈 수 있겠죠? 부탁해요 공주님들~.”

    “네~.”

    예상을 뒤엎은 온화한 멘트였다.

    그리고는 신기할 만큼 조용해졌다. 시끌벅적하던 버스 안이 한순간 잠잠해졌다. 소곤대는 이야기 정도야 말 많은 여고생의 귀여움인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그들을 한순간 제압한 힘이란 무엇일까?

    예상치도 않았던 기사님의 압도적인 상황에 왠지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중요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살아있는 소중한 장면을 담았다는 좋은 기분이 들었다.

    기사님이 여고생들을 대하는 마음은 나와 달랐다. 버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무리를 인지하는 나 자신의 감정은 수적 우위와 소리의 압도로 적대적인 상대로 대치하려는 심리였지만, 그분은 달랐다.

    ‘예쁜 공주님들’이라는 표현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격을 존중했다. 그리고 깍듯하게 당부했다. 딸과 같은 나이의 여고생들이지만 마음이 담긴 정중한 억양과 표현이었다. 기사님의 정중하고 깍듯한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여고생들도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상대와 나의 관계에 관해 요즘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갑·을’ 관계다. 탑승자와 운전자 중에 누가 ‘갑’이고 ‘을’인지는 생각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내가 본 그 기사님은 이 시대에 많이도 얽혀 있는 상호관계를 풀 수 있는 아름다운 방정식을 알고 있는 분이었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상호관계가 절실한 요즘 그의 방정식이자 우리가 찾는 해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정종효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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