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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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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티 소믈리에' 박은애씨

“차(茶)로 사람을 치유하는 나는 티 소믈리에입니다”

  • 기사입력 : 2015-06-0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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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인 최초 독일 인증 ‘티 소믈리에’인 박은애씨가 창원시 성산구 귀곡동 자신의 카페에서 다양한 차통 사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직장에 다니는 한 지인은 항상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차(茶)를 마시며 하루를 정리한다. 찻잎을 우려 잔에 따른 후 호호 불며 향과 맛을 느끼노라면 바쁜 일상 속 조급했던 마음이 고요한 진정상태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란다. 차 한 잔에 마음이 편해지고, 피로가 가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있자면 실제 의약적 효과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박은애(43)씨 또한 이 같은 가설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차 공부를 시작해 현재는 독일정부 인증 첫 동양인 ‘티 소믈리에’이자 창원 귀산동 티 전문 카페의 주인이 됐다.

    ◆차(茶)로의 안내자, 티 소믈리에

    차 제조과정, 산지별 향미 등 차에 대한 전반적 지식은 물론 이를 통해 마시는 사람의 취향·유형, 혹은 계절에 따라 차를 추천해줄 수 있는 차 전문가를 말하는 티 소믈리에.

    그녀에게 티 소믈리에는 ‘차 안내자’다. 전문가라는 거창한 의미보다는 차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차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차를 마시도록 이끄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녀는 차를 통해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신체적으로 여유를 찾아주는 것이 티 소믈리에로서의 소명이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원하는 맛과 향이 다르고, 또 계절에 따라서도 취향이 바뀌다 보니 차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아야 손님에 따라 차를 추천해 드릴 수 있습니다. 여유를 즐기거나 혹은 여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차는 방해가 될 수 있죠.”

    그녀는 약 2년 전 독일상공협회가 주관하는 티 소믈리에 교육이수를 시작해 지난해 동양인 최초 독일 인증 ‘티 소믈리에’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11년 국내서 설립된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의 티 소믈리에 자격과 비교해 ‘어느 것이 더 높은 레벨이냐’고 묻자 그녀는 우위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차 전문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국내에는 이미 차 문화를 생활화해 오신 국산차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에 비해 제가 뛰어나다 할 수 없는 것처럼 자격을 어디서 인증받았느냐에 따라 어느 것이 정답이라거나 우위에 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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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된 일상에서의 일탈, 그리고 차

    박 대표가 처음부터 티 소믈리에라는 직업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게 된다. 영어강사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 박 대표는 물론 주변 이들에게도 행복의 기준이 될 법한 일이었지만 그 기준은 오래가지 않았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세월이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저는 서른아홉이었고 할 줄 아는 것은 영어밖에 없더라고요. 더 늦기 전에 다른 것을 한번 배워보고 경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10년 넘게 해온 일을 놓게 됐습니다.”

    가족은 물론이고 지인들은 모두 그녀를 말렸다. 도전은 응원할 만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의 걱정이었지만 이미 그녀 마음의 방향은 굳어진 후였다.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커피를 전문적으로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무작정 독일로 떠났다.

    “코테카(COTECA)라고 함부르크에서 커피·티·카카오를 주제로 하는 글로벌 산업엑스포가 열리더라고요. 로스팅기는 물론 커피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떠난 거였는데 거기서 오히려 티에 빠지게 됐습니다.”

    합리적인 탓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만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었고, 그것이 현재 국내에서 포화상태인 커피라면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이었다.

    “커피보다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강한 데다 국내에서 차 시장은 허허벌판 상태에 가까웠죠. 사치스러운 시선이 강했지만 몸에 좋은 음료라는 점에 이끌려 차 문화를 개척하겠다 다짐했습니다.”

    ◆몸과 마음의 치유제, 차를 문화로

    박 대표는 바쁘고 항상 경쟁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에 차는 효과적인 치유제가 된다고 믿는다.

    “유럽인들은 실제로 수면장애가 있다거나 간이 안 좋다거나 할 때 약 대신 효능에 맞는 차를 물처럼 마십니다. 독일에서 찻잎은 대표적으로 제약회사와 차회사, 식품회사 세 군데로 보급이 된다고 하니 말 다했죠.”

    진짜 약은 아니니 좋은 성분의 차를 ‘물처럼’ 마셔야 효과가 있을 법한데 박 대표가 생각하기에 아직 국내 차 시장은 걸음마 수준에 가깝다. 차를 판매하는 가게는 많지만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차를 대중적인 문화로 정착시켜 현대인들의 치유제가 되게 하려면 일단 관심을 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직접 티 전문 카페를 차린 것도 그 때문이죠. 가고 싶을 정도로 끌리는 장소여야 하고, 그 장소에서 차를 마신다면 차에 대한 관심이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였습니다.”

    박 대표는 카페 내 가구는 물론 그림액자 등 모든 소품을 독일에서 공수해온다. 이국적인 느낌이 가득한 곳에서 100년이 넘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중에는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한다는 전략이었다. 박 대표의 카페는 예상을 적중했다. 이국적인 인테리어로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단골이 더 많다. 창가에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차 가격의 합리화와 제다(製茶) 방법 변혁 등 차를 문화화하기 위한 과제가 넘쳐난다고 본다.

    “차 한 잔에서 느끼는 여유가 비싸서 사치스럽게 느껴진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제다 방법 개선을 통해 조금은 가격이 가벼워져야 하고, 집에서도 편하게 먹을 수 있을 만하게 고품질 티백 형태도 많이 마련돼야겠죠. 또 저처럼 차에 대해 공부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차는 문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박 대표는 티 소믈리에는 단순히 전문가가 아니라 안내자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카페를 찾는 손님들에게도 수많은 차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신청자에 한해 티 클래스를 열기도 한다.

    “차가 우연하게 저를 사로잡았던 것처럼 사람들도 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 ‘한 손에 커피’라는 말처럼 차를 테이크아웃해 들고 다니는 풍경이 벌어지는 게 저의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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