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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 청춘블루스] 청춘 2호. 고액 연봉 대신 드러머길 선택한 이경찬

'재미'있는 곳에 '행복'도 있더라

  • 기사입력 : 2015-04-28 10: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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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펙남, 증권맨, 실장님, 드러머(Drummer) 그리고 셔터맨…. 제 닉네임들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별명이 하나 추가 됐군요. 인사할까요?

    33번째 봄을 맞고 있는 청춘 2호 이경찬입니다. 당신의 세상 사는 재미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다 떠난 후 조용하고 어두운 학원에서 혼자 드라마를 보며 딱판을 치는 게 요즘 저의 낙입니다.

    사내 녀석이 드라마는 다 무엇이고, 딱판은 또 뭐냐고요? 30대 싱글남의 외로움을 더욱 사무치게 하는 트렌디 드라마 대신 대하드라마를 선택했고, 여자친구 대신 껴안고 있는 '딱판'은 드럼 연습용 패드로 손의 감각을 살려주는 분신과 같은 도구이자 친구입니다.

    네, 저는 드러머입니다. 창원을 비롯해 경남에서 활동하는 어쿠스틱 팝밴드 '엔틱트리'에서 드럼 연주를 맡고 있죠. 직장 생활에다 학교까지 다니며 좋아하는 연주를 병행하는 우리 엔틱트리 멤버들이야말로 청춘다운 청춘들인데, 제가 인터뷰 대상이 된 이유는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기 때문이라지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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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머 이경찬씨가 창원 성산구 인실용음악학원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나름 화려한 스펙, 그러나 지금은 셔터맨= 말쑥하게 수트를 차려 입고 출근했던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마치 백수생활을 하는 것처럼 편안한 복장으로 다니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백수는 아닙니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왔어요.

    부산대학교를 졸업하고 증권 회사에 다녔습니다. 3000만원이 훌쩍 넘는 연봉을 받으며 먹고 싶은 것은 먹고 사고 싶은 것은 사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죠. 앞서 첫 직장은 부산의 한 사립대였는데, 1년 만에 그만뒀습니다. 풍족한 월급은 제게 멋진 차를 선물해줬지만 어느 날 보니 굳이 사람의 두뇌가 필요 없는 일을 제가 하고 있더군요.

    서울대를 나오든, 전문대를 나오든 상관 없는 그런 일 말이에요. 큰 비극은 '재미'가 없었단 거에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사표를 던졌죠. 이전보다 월급도 많으면서 보다 활동적이고 사람도 많이 만나는 일을 해보고 싶어 증권회사를 선택했는데, 상품을 팔아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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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머 이경찬씨가 창원 성산구 인실용음악학원 연습실에서 드럼 연주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타 회사와 다를 바 없는 상품인데 훨씬 좋은 것처럼 그럴 듯하게 포장해 모객 행위를 한다는 게 왠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어요. 실적에 따라 매일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기도 했고요. 나이는 한 살 두 살 먹어가는데 이대로 덜컥 결혼이라도 해버리면, 이 훈련캠프 같은 곳에 꼼짝 없이 갇히겠구나 싶더군요.

    다시 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제 사업을 시작했죠. 창원에서 조그만 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합니다. 2년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학원 실장님이자 일명 셔터맨이 됐지만, 이게 다 드럼 때문이니 기분이 좋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드럼을 연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저지른 일이거든요. 멤버들은 회사를 나와 일(?)을 저지른 저를 보고 "제 정신이 아니야"라고 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드럼만큼 재미 있는 게 없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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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머 이경찬씨가 창원 성산구 인실용음악학원 연습실에서 드럼 연주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싫증 대마왕에게 드럼이란= 고백하면 저는 싫증을 무척 잘 냅니다. 가만보면 직장을 그만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행동은 아닌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생각했는데 시골에서 자라면서 시야가 늦게 트인 거죠.

    저는 고성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촌놈입니다. 심지어 병역 대체 복무지도 고성이어서 무려 24년간 고성에서 살았죠. 학생 때 저는 완전히 모범생도 아니었고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파란만장하게 보내지도 못했어요. 넓은 세상을 접하지 못했던 시골생활에서 제 적성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고,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에 장남으로서 자리를 지켜야 했거든요. 그래도 공부는 좀 했어요. 성적을 잘 받아가면 그나마 부모님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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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3, 국립대가 아니면 대학을 포기하라는 어머니의 단호한 말씀에 대학은 가야겠다 싶어 공부에 매달렸고 덕분에 부산대학교 행정학과에 합격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조그만 동네에 플래카드가 내걸렸었답니다. 하지만 대학생활 역시 녹록지 않더군요. 파도에 실려가는 나뭇잎처럼 현실에 순행하려고만 하는 친구들과 같아지기 싫었어요. 학교나 직장생활은 회의가 들고 싫증이 났는데, 드럼은 달랐죠.

    19살 때 교회에서 처음 접한 드럼은 학교와 집을 무료하게 오가던 제게 그야말로 신세계였죠. 비트에 맞춰 스틱을 퉁퉁 튀기면 제 심장까지 쿵쿵쿵 울렸죠. 집과 학교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한순간 날아가버리는 기분이었어요. 드럼은 휴대할 수 없는데다, 이런 저런 이유로 스틱을 잡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만, 지난 10여 년간 제가 도망가고 싶을 때 탈출구가 되어주고,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주고, 그래서 끊임없이 제가 갈구했던 건 바로 드럼이었어요. 뒤늦게 깨달은 거죠. 숙명을! 직장생활을 중에도 매일 같이 통영으로 드럼을 치러 갔다고 하면, 변명이 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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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머 이경찬씨./김승권 기자/>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은= 전문적인 드럼 교육을 받아본 적 없지만, 10년 넘게 드럼 하나에만 매달렸더니 취미반 학생을 가르칠 정도는 됩니다.

    처음부터 학원을 차릴 생각은 아니었어요.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그저 좋아서 시작한 거니깐. 청춘끼리 모이면, 현실의 벽보다는 앞으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잖아요. 친한 동생과 함께 마음껏 연주하고 놀고 싶은 마음에 공간을 마련했는데 일이 커졌죠. 동생이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실력파 뮤지션이라 레슨을 받으려는 학생들이 한 명, 두 명 찾아왔고, 내친 김에 지난해 12월 학원을 열었습니다.

    연주할 공간도 생기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였어요. 그 덕분에 저도 밥벌이는 하고 삽니다. 돈벌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드럼 연주가 제게는 중요하죠. 동업하는 동생과 합심해 '엔틱트리'라는 4인조 밴드를 만들어 공연도 합니다.

    창원의 라이브바든 의령의 동문회 행사든, 연주할 무대가 있고, 우리를 불러주는 곳이 있어서 행복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요즘 하나의 재미가 더 생겼는데요. 바로 음악을 배우려는 학생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입니다. 제게 또 하나의 우주와 다름없는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들이 제가 만든 공간 속에서 음악을 하며 웃고 떠드는 것을 지켜보면 저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지어집니다.

    종일 사람을 상대로 내키지 않는 상품 설명을 하고 있을 때와는 삶의 질이 달라졌어요. 쌓여가는 통장 잔고 말고도 세상을 살고 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은 많고, 그걸 찾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일까, 새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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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머 이경찬씨가 창원 성산구 인실용음악학원에서 학원수업이 끝난 연습실에 혼자 앉아 있다./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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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목표, 그리고 10년 뒤= '청춘'에게 고맙습니다. 누구의 것이 아닌 바로 나의 청춘에게 말이죠.

    힘과 용기가 없어 그저 숨죽이고 있었던 지난 시절을 딛고 일어서서, 예전에 내가 무엇을 했었는지 따위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털어내버리고, 주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라고 부추긴 게 바로 나의 청춘이니까요.

    이제 새로운 목표와 꿈을 보고 앞으로 나갈 겁니다. 하나는 뮤지션으로서의 성공, 다른 하나는 음악을 꿈꾸는 학생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 지역의 뮤지션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배우러 다니면서 연주도 해야죠. 팀을 만들어 음반 작업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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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아주 멋진 앨범이 나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해낼 겁니다. 그리고, 학원은 예기치 않게 작은 규모로 시작하게 됐지만, 이왕 시작한 것이니 더욱 키워나갈 생각이에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되고 삶의 활력소도 되잖아요. 음악을 하고 싶지만 어려운 사정 때문에 꿈을 접어야 하는 학생들은 도와주고 싶어요.

    멀리 본다면, 저와 동료들은 대안학교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또 쉽게 얻으면 그만큼 재미와 행복도 덜 하잖아요.

    아, 이 인터뷰 주제가 뭐였죠?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요? 네! 행복합니다.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위 기사는 인터뷰를 토대로 기자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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