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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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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신년리포트- 아침을 여는 사람들 (7) 진해 용원어시장 탐방기

바닷가 찬바람 삶의 현장 “자식 키울라꼬 하는기라”

  • 기사입력 : 2015-02-1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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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새벽 창원시 진해구 용원어시장에서 김호철 기자가 상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성승건 기자/

    겨울철 새벽 3시에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 시각부터 칼바람 추위를 이겨내고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며 노상에서 저녁까지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고통이 느껴진다.

    하루가 아닌 매일, 그것도 20년, 30년 넘게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면 어떨까. 요즘 화이트칼라 젊은 세대에겐 ‘지옥’과 다름없을 것이다.

    남편 또는 아내를 위해, 자식을 위해 한마디 힘든 내색 없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이렇게 지내온 사람들. 여력이 있는 한 앞으로 기약 없이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 진해 용원어시장 상인들도 그 부류의 사람들이다.

    지난 5일 새벽 4시. 휴대전화 알람을 3시에 맞춰놨지만 몇 분간 울렸을 ‘어서 일어나’ 자동음성은 기자에게 들리지도 않았다. 전날 9시쯤 취침한 덕에 그나마 새벽 4시에 일어날 수 있었다.

    용원어시장 상인들은 몇 시부터 장사 준비를 시작하는지 몰랐다. 4시쯤 가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게 웬일인가! 새벽 4시 30분쯤 어시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북새통을 이뤘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부랴부랴 차에서 내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린 장소로 갔다.

    사람이 몰린 곳은 단연 공판장이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공판장에는 상인들이 빙 둘러 서서 바닥에 반복적으로 쏟아지는 생선들을 지켜보며 경매사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이들 중에서 40대 이하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소 50대 중반에서 70대 초반 사이였다. 대부분 나이 많은 우리 어머니들이었다.

    입춘 다음 날인데도 바닷가 바람은 매서웠다. 점퍼를 두 개나 겹쳐 입었는데도 추위가 몸속을 파고들었다.

    경매는 계속 진행됐다. 그 와중에 생선과 해산물을 받아온 상인들이 하나둘씩 오랜 세월 동안 지켜온 간판 없는 자기만의 노상 좌판에 앉았다. 사실 노상에는 좌판도 없다. 그냥 크고 작은 플라스틱 ‘다라이’(큰대야)를 길바닥에 갖다 놓으면 좌판이 된다.

    자리를 잡은 상인들은 하나같이 숯불구이 집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화로에 불을 피웠다. 작은 화로 하나로 매서운 추위를 어떻게 견딜까 싶었다.

    노상 좌판에서 찬물에 호래기를 손질하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목도리를 눈, 코, 입만 빼고 머리에 둘둘 감았다.

    “할매, 왜 이렇게 일찍 나와요?”

    “응, 경매하니까. 새벽 4시 30분부터 해서 아침 8시까지 경매를 하거든.”

    “경매를 좀 늦게 하라고 하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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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원어시장 상인들이 경매에 부쳐질 생선들을 살펴보고 있다./성승건 기자/

    “그러게 늦차서(늦춰서) 안 하고 말이지. 그런데 어민들이 고기 잡아오는 시간이 있다 아이가. 어민들도 밤새도록 잠 안 자고 잡아왔는데 빨리 팔고 들어가 자야제.”

    “할매는 장사를 얼마나 했는데요.”

    “올해 67살인데 한 20년 정도 했어. 그때도 이 자리였어. 여기 다른 사람들보다 좀 늦게 시작했지. 원래 용원에서 태어나 컸는데 시집을 구룡포에 가 가지고 살다가 다시 이리로 살로 왔어.”

    “장사를 하게 된 사연이 있어요?”

    “아니 뭐 사연이 있나. 우리가 벌어먹고 살라고 하는 기제. 하하하. 사연이라고 할 게 없어. 이렇게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뭐 그럴라꼬 하는 기제.”

    “이렇게 일찍 손님은 옵니까.”

    “아침 일찍 손님들은 많이 사러 오지도 안 해. 추우니까. 요새 날이 더 추워가지고 불 째고 있어야 돼. 대구 많이 날 때는 방송국에서 많이 오고했는데, 대구가 끝나 지금은 나는 게 별로 없어. 토요일 일요일엔 손님이 많은 데 지금은 별로 없어.”

    “아침은 언제 드세요.”

    “손님한테 팔 거 다듬어 놓고 한 9시나 되면 밥 묵어야지.”

    “할매, 성함이 어떻게 돼요.”

    “내 이름. 하하~. 변자 영자 자자, 변영자.”

    다른 좌판에서 종이컵에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이름과 하루 일과를 물었다.

    “이름? 가르쳐주기 싫은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씻고 화장실 갔다 오고 하면 4시가 돼. 4시 30분에 경매하면 와서 물건 사고팔고 하다 집에 들어가면 저녁 6시야. 매일 그래. 그래도 시장에 와서 사람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니까 매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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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새벽 창원시 진해구 용원어시장에서 상인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바지락을 까고 있다./성승건 기자/

    옆에서 말을 않던 김남순(66) 할머니 소개도 해줬다.

    “내보다 나이 많아. 60대야. 이 할매는 별명이 ‘동그랑땡’이야. 천연기념물 동안이야. 하하.”

    2시간이 더 지났음에도 경매는 진행 중이었다. 공판장 옆에서 좌판 상인들과 다르게 ‘67번 중매인’이라고 쓰인 작은 간판 하나 걸고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기자가 다가가자 다른 곳을 보면서 말을 꺼냈다. 이름은 이정현이고, 나이는 간판처럼 67세란다.

    “할아버지도 매일 이렇게 일찍 나오세요?”

    “매일 나오지. 새벽 4시부터 경매하는데 4시 30분에는 굴, 미역 같은 해산물 하고 5시부터는 활어 같은 걸 해. 보통 7시에 경매가 끝나.”

    “장사한 지 얼마나 됐어요.”

    “오래됐지. 여기 어시장에서 내가 제일 오래됐어. 한 30년 했어. 용원어시장이 작년에 100주년 맞았어. 옛날에는 이보다 크기가 작았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았어. 올해 4~5월에 리모델링할 건데 더 좋아질거야.”

    좌충우돌 상인들을 만나고 나니 아침 7시. 새까맣던 겨울 앞바다에 여명이 비쳤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일손은 손님맞이에 더욱 바빠졌다. 용원어시장에는 식당을 제외하고 이처럼 생선을 팔거나 회를 떠주는 상인들이 100여명 있다.

    이들은 매일 새벽 4시에 첫 인사를 서로 나누고, 어시장에서 동고동락하며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올해 봄이 오면 어시장 리모델링과 함께 좀 더 따뜻한 희망의 새벽을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김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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