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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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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꿈꾸자, 경남] (6) 건강한 육아 꿈꾸는 양산공동육아협동조합

부모 60여명 출자 어린이집 설립…원장·교사·조리사로 일하기도
양산 동면 산동네에 있는 밖으로 나가자 숲 어린이집
아이 좋아, 엄마아빠들이 만든 어린이집

  • 기사입력 : 2015-02-0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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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 동면 ‘밖으로 나가자 숲 어린이집’ 원생들이 어린이집 뒷산에서 미끄럼을 타고 놀며 즐거워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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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실로 우리 조상들이 그랬다. 한 아이가 태어나면 집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와 삼촌이 함께 아이를 돌봤고, 동네 어른들과 형, 언니 모두가 아이를 훈육하고 이끌었다.

    이 같은 방식은 부모에겐 육아의 짐을 덜게 했고, 아이에게는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게 했다. 최근 어린이집 학대 사건 등으로 어린이집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이 같은 공동체 육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동네의 부모들이 모여 직접 어린이집을 만들고 운영에 참가하면서 아이들에게 부모와 이모, 삼촌, 선생님의 역할을 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양산시 동면의 한 산동네, 60여명의 부모들이 건강한 공동육아를 꿈꾸며 만들었다는 ‘밖으로 나가자 숲 어린이집’을 찾았다.



    ◆부모들의 고민, 새로운 어린이집을 만들다

    2012년, 한 가정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있던 학부모 15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4세 자녀를 둔 부모들이었다. 기존에 다니던 어린이집의 정원 문제로 아이들이 더 이상 다닐 수가 없게 된 것이 모임의 계기였고, 야외활동 위주의 수업을 계속 받을 수 있는 곳을 물색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고민하던 이들은 새로운 생각을 한다. “우리가 어린이집을 만들자.”

    결론적으로 이들은 그 꿈을 이뤘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공간을 임대하고, 부모협동 어린이집 형태인 ‘밖으로 나가자 어린이집(정원 20명)’을 만들었다. 함께 만든 어린이집의 만족도는 높았다.

    2013년, 소문을 들은 지역의 많은 부모들이 함께하기를 원했다. 기존 공간은 좁았고, 이전 확장을 해야 했다. 300여명의 학부모가 참가한 가운데 설명회를 가졌고, 50명이 실제 참가해 300만원씩 출자금을 모아서 새 어린이집을 만들기로 했다.

    2014년, 이들은 93명 정원의 ‘밖으로 나가자 숲 어린이집’ 문을 열었다. 위치는 산동네다. 교통편도 좋지 않고 주변 편의시설도 없지만, 산이 가깝고 하루 종일 볕이 잘 드는 곳이다. 원장은 조합원 오현아(47)씨가 맡았다.

    오씨는 “어린이집 오픈 초기에 준공 문제와 인허가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조합원(부모)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설립에 힘을 모았다”며 “기존 어린이집에는 1세반 20명이 다니고 있고, 이곳에서는 0세와 2~5세 아이들 69명이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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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TV가 필요 없는 ‘부모 인증’ 어린이집

    ‘밖으로 나가자 숲 어린이집’의 지향점은 그 이름처럼 ‘밖으로 나가자’다. 아이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숲으로 간다. 어린이집 뒤로 100m가량 떨어져 있는 숲은 동네 주민의 산인데, 산 주인은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도록 매번 잔디를 깎아 준다.

    기자가 찾은 날도 아이들이 동네 뒷산에서 뒹굴며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좁은 흙길을 달려 익숙한 듯 산으로 향했고, 나무와 풀과 흙을 가지고 놀았다. 언덕을 기어올라 미끄럼을 타고, 무릎을 꿇고 나무 밑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신발과 옷은 금방 흙투성이가 됐다.

    원장 오씨는 “조합원(부모)들은 아이들이 몸으로 노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옷을 버리거나 작은 상처가 생기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1년간 이런 수업을 해보니 아이들의 잔병치레가 없어지고 더 건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어린이집은 수업 내용을 부모와 교사들이 함께 정한다. 연초 각 반별로 모여 회의를 하고, 요구와 현실을 절충해서 수업 커리큘럼을 짜는 식이다. 오 원장은 대다수 부모들이 교육보다는 놀이를 원한다고 했다.

    부모들은 어린이집에 큰일이 있을 때 노무봉사를 하고, 월 1~2회 체험수업은 물론 수업에 직접 강사로 참여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바이올린, 아쟁, 발레, 제빵 등의 기술을 가진 부모들이 무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재능기부를 했다.

    게다가 어린이집을 부모 친목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어린이집에서 정기적인 바느질 모임, 염색 소모임을 가지는 식이다.

    또 0세반에 아이가 있는 오 원장을 비롯해 교사와 조리사로 직접 현장에서 일하는 부모들도 있다.

    4세 원아의 학부모이면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는 전혜정(32)씨는 “부모이자 직원으로 직접 주방에서 일을 하니 더 꼼꼼하고 맛있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며 “부모들이 언제나 함께할 수 있도록 문이 열려 있어서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원장은 “우리 어린이집은 지난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있었을 때도 문의전화가 전혀 없었고, 앞으로도 CCTV는 필요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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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아 원장


    ◆아직은 힘겨운 부모협동 어린이집 활성화

    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주최는 ‘양산공동육아조합’이다. 모든 조합원은 부모들이다. 보건복지부 영유아보호법에 의해서다.

    그러나 조합의 시작 단계에서는 달랐다고 한다. 2012년 설립 당시 이들은 ‘양산공동육아협동조합’이란 이름으로 ‘마을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자’는 목표를 가진 협동조합을 구성했다. 학부모를 비롯해서 교사, 지역민들도 조합원으로 참가했다. 학부모들은 출자금을, 교사들은 재능을, 지역민들은 시간과 금액을 후원했다. 아이들은 즐거웠고, 부모들은 안심했고, 교사와 이웃들은 뿌듯했다.

    그러나 2014년 부모협동 어린이집에 대한 법령이 강화되면서 조합은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 자격이 부모로 한정됐고, 그들이 추구하던 개념의 공동육아는 어려워졌다. 오 원장은 이념의 변화뿐 아니라 이로 인한 현실적인 어려움도 이야기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부모협동 어린이집의 대표는 조합원이어야 합니다. 자녀가 어린이집을 졸업하면 평균 2~3년마다 대표를 바꿔야 하는데, 사실상 어려움이 많죠. 어린이집 대표 명의, 차량 소유, 임대차 계약 등 모든 서류를 새로 작성해야 합니다. 사정상 1년이 채 안돼 어린이집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죠. 또 아이가 11명 이상이 돼야 운영이 가능한데, 소규모 어린이집은 해마다 인원수를 맞추기도 쉽지 않고요. 이러다 보니 사실상 부모협동 어린이집을 길게 유지하기가 어렵죠.”

    정부의 지원도 미흡하다고 토로했다. 작년까지 경남도에서는 부모협동 어린이집에 대한 취사·난방료를 지원하지 않았다. 타 어린이집과 설립 방식이 다르지만 이를 배려한 별도의 규정이나 지원도 없다.

    반면 지역 부모들의 관심은 뜨겁다. 벌써 대기자 50명이 출자금을 내고 대기 중이고,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오 원장은 “이 지역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부모협동 어린이집에 대해 문의해 옵니다. 마을마다 특성에 맞는 어린이집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예로 다문화가정이 많은 동네에는 그에 맞는 어린이집을 만드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협동을 시작하려고 할 때 정부가 더욱 협조적으로 지원해 줬으면 좋겠어요. 내 자식 내가 직접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거 아니겠어요?”

    조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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