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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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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신년리포트- 아침을 여는 사람들 (3) 인력사무소 일꾼 체험기

벽돌 운반작업 4시간… 땀으로 채운 보도블록
김용훈 기자의 새벽 인력시장 체험기

  • 기사입력 : 2015-01-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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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훈 기자가 김해시 장유면 한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놀이터 조성 공사 현장에서 보도블록을 나르고 있다./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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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훈 기자가 작업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보도블록 포장 작업이 한창이다./성승건 기자/


    “다른 사람들이 일을 못합니다.”

    1차 섭외는 불발됐다. 경남신문 을미년 신년리포트 ‘아침을 여는 사람들’ 게재를 위해 인력사무소 체험을 선택했지만 섭외가 쉽지 않았다.

    “하루에도 여러 명이 일을 못하고 돌아가요.”

    인력사무소장마다 일감이 별로 없다는 설명에 무작정 일을 달라고 떼를 쓸 수도 없었다. 기자 체험을 한답시고 우선순위로 일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인력사무소장은 “취지는 좋지만 기자양반에게 일을 먼저 주면 대기하던 다른 사람이 일을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인력사무소를 수소문하던 끝에 (사)전국고용서비스협회에 연락이 닿아 사정을 설명했다. 경남지회 창원시 의창구·성산구 지부장을 맡고 있는 한점현 인력사무소장이 일감을 알아봐줬다.

    한 소장은 “아침에 일찍 나와 일감이 없어 뒤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업체(고용주)와 미리 협의해 아침에 대기하다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전날 일꾼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방법으로 인력 소개를 한다.

    “아침 일찍 사무소로 나오이소. 일행과 같이 김해시 장유 아파트로 가면 됩니더.”

    일당은 받지 않기로 했다. 지난 8일 오전 6시. 창원시 의창구 동읍의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한 소장은 “경기가 좋고 안 좋고는 인력사무소가 제일 민감하다”며 “겨울철이라 일이 없기도 하지만 지난해부터 갈수록 일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 한잔 후 일행 2명과 함께 장유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의 보도블록 포장공사가 오늘 할 일이었다. 이미 4명의 일꾼이 도착해 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지만 먼저 도착한 이들이 농을 건넸다.

    “집에 갈 때 오는교? 자, 빨리 날르이소.”

    한쪽에 보도블록 수백장이 쌓여 있었고 이 블록을 놀이터 주변으로 까는 작업이다. 블록을 바닥에 까는 일은 숙련된 2명이 차곡차곡 무늬를 맞춰 가며 깔았고 기자를 포함한 나머지 일꾼들은 깔리는 곳에 블록을 날랐다.

    ‘이정도 쯤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4장씩 들고 날랐는데 다른 일꾼들은 6장씩 들고 날랐다. 조금 무겁지만 손이 부끄러워 6~7장씩 들고 날랐다. 단순작업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었다. 그들의 눈에는 초보의 티가 보였나보다.

    “많이 나른다고 일 잘하는 게 아니요. 조심히 꾸준히 해야지.”

    최모(47)씨는 기자의 장갑을 보자 “지금이야 괜찮지만 몇 시간 나르다 보면 손이 까질 수 있다”며 두 겹씩 낄 것을 조언했다.

    장갑을 한 겹 더 끼고 다시 쉴 새 없이 블록 나르기를 반복했다. 핸드카에 싣기 위해 팰릿에 블록을 쌓고, 운반하고, 블록을 하나하나 땅에 끼워 맞추는 등 각자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나갔다.

    쉬는 시간 없이 한참이나 지났다고 느낄 때쯤,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8시 30분. 하루가 이렇게 길 줄 몰랐다. 팔이 저렸다. 일을 쉽게 보았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2시간쯤 지났을 무렵 일행 중 한 명이 승합차에서 컵라면을 내왔다.

    컵라면을 먹으며 잠시 쉬는 동안, 정신없이 나르느라 자세히 보지 못했던 일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자를 포함해 7명의 일꾼 중 기자가 39세로 제일 어렸다. 기자 다음으로 나이가 적은 이가 49세이고 50대 2명, 60대가 3명이었다.

    40년째 막노동일을 하는 정종근(64)씨는 점점 일감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했다. 정씨는 “옛날에는 부르는 데가 많았는데 요즘은 한 달 중 일할 때가 열흘이 될까 말까다”며 “경기가 안 좋아 갈수록 일이 줄어 걱정이다”고 말했다.

    최씨도 말을 거들었다. 그는 “요즘 경기가 완전 바닥인데 계속 이렇게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최씨는 건설현장에서 파일을 박는 중장비 일을 주로 했지만 수개월 동안 일감이 없어 틈만 나면 막노동일을 나온다. 이들 중 늦깎이 신참도 있었다. 막노동일은 처음으로, 5일째 나왔다는 이모(61)씨는 정년퇴임 후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왔다.

    왜 젊은 사람들은 없을까? 일꾼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는데 요즘 20~30대는 일하러 오지 않냐는 질문에 이들은 “가끔 본다”고 했다.

    간혹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 일하러 오지만 대부분 하루 일하는 정도에 그쳐 일의 연속성이 떨어져 같이 작업하는 데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용돈 벌러 오는데, 그냥 돈 주는 거지.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해야 될 거 아니요.”

    생계를 위한 현장에 잠시 체험을 하러 온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항만, 다리 건설 등 건설현장에서 겪은 잠깐의 무용담이 끝나고 또다시 작업이 시작됐다.

    그들의 묵묵히 일하는 모습에서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각자 사정은 다르지만 명예퇴직에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결국 또 자식들 뒷바라지에 가장으로서 일을 해야 하는 현장. 그곳에 아버지들이 있었다.

    “기자 양반, 우리 일하는 거 뭘 그렇게 쓸 게 있소. 그냥 경기나 좀 좋게 해주이소.”

    4시간여의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걷는 길의 보도블록이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가 걸어온 길, 이 거리, 수많은 땀의 흔적이구나. 우리네 아버지들이 이룬….’

    김용훈 기자 y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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