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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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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꿈꾸자, 경남] (2) 희망 농촌 꿈꾸는 20대 농부

전자과서 원예과로 전과한 뒤 농촌으로…디지털로 소통하며 억대 소득

  • 기사입력 : 2015-01-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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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농부 박태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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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우씨가 의령군 용덕면 비닐하우스에서 한창 자라고 있는 멜론을 들어보이고 있다. 땀범벅인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김승권 기자/

    밀짚모자를 쓰고 나타난 그의 첫인상은 ‘농촌체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이돌 같았다. 곱상한 외모에 호리호리한 체격, 무엇보다 농부라 하기엔 너무 어렸다. 자신을 멜론 농부라 소개한 그는 비닐하우스를 향해 앞장서 걸었다. 그제야 그의 바짓단 곳곳에 묻은 흙과 낡은 고무장화가 눈에 들어왔다. 진짜 농부의 뒷모습이었다.

    박태우(29·의령군 용덕면)씨는 5년차 농부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억대 농부’다. 18동의 비닐하우스를 가지고 있고, 연간 매출이 1억원을 넘는다. 짧은 농사경험으로는 고무적인 성과다. 그런데 그는 “부농은 내 꿈이 아니다”고 말한다. 농촌지역에서 한참이나 막내인 그는 벌써 ‘함께 사는 농촌’을 그리고 있었다.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빚은 지지 않는 농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작은 행복을 당당히 내 자녀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그런 농촌을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대학생, 농부를 결심하다

    대학 2학년까지만 해도 그는 회사원을 꿈꾸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전자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입사시험을 치고, 회사에 취직해 월급을 받고 사는 ‘남과 같은 삶’을 꿈꿨다. 그런 그가 목표를 바꾼 것은 우연히 접한 책 한 권이었다.

    “미래 먹거리에 관한 책을 읽게 됐어요. 생명산업이 끊어지면 나라 기강이 흔들린다는 내용이었는데, 농업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죠. 유기농 먹거리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농업 본연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이야기였는데 제가 살아온 농촌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죠. 안타깝기도 했고, 호기심도 생겼어요.”

    사실 농사꾼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에게 ‘농부’는 최후 순위의 직업군이었다. 농업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사가 싫지는 않았지만 비전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책을 통해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됐고, 제대로 된 유기농업을 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농업을 공부해야 하겠다고 결심했죠.”

    섣불리 시작할 수는 없었다. 우선 1년 동안 전자과 수업 대신 원예과 수업을 쫓아다녔다. 교수들이 ‘이상한 놈’이라고 했지만, 점점 재미가 있었다. 흙 위에서 생명을 기르는 일은 그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봐 왔던 일이었다.

    “친구들은 책으로만 농사를 배우는데, 저는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론과 실제가 연계가 되면서 더 재미있었어요. 공부를 할수록 즐겁고 보람된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이 농사라는 확신이 생겼죠.”

    그는 1년 후 원예과로 전과를 했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준비했다. 2011년 졸업 후 그는 진짜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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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군 용덕면 비닐하우스에서 멜론을 재배하고 있는 20대 농부 박태우씨.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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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군 용덕면 비닐하우스에서 멜론을 재배하고 있는 20대 농부 박태우씨의 뒷모습. 밀짚모자와 흙이 묻은 작업복과 신발이 농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초보 농부, 농촌에 빠져들다

    농부가 되기로 한 그는 매일 어머니의 멜론 시설하우스로 나갔지만 정작 어머니의 태도는 냉담했다. 그에게 아무런 일도 주지 않고 포기하기만을 바랐다. 그가 어머니에게 인정받기까지는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의 반대도 있었지만, 정작 농사를 시작하니 배우는 일이 무척 힘들었어요. ‘왜’ 라는 질문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마을 어르신들은 이맘때면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식의 노하우는 있는데, 그 체계를 이론적으로 설명해 주지 못하는 거죠. ”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진주의 한 40대 농부 스승을 만나게 됐고, 의령에서 진주를 오가면서 궁금했던 농사기법을 배웠다. 또 농업기술센터와 작목 연구회에서 교육을 받고 연구를 하며 빠른 속도로 농사를 안정화시켜 나갔다.

    도내 최초로 연중 4기작을 통해 보다 많은 양의 멜론을 수확해 보는 등 열정적인 노력도 계속했다.

    그렇게 1년, 어머니는 그동안 주먹구구식이었던 멜론 농사가 안정화되고, 매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그의 선택을 인정했다.

    “어머니께서 든든하다고 말씀하세요. 친구들도 처음에는 걱정하거나 안타까워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취업걱정 없이 제 일을 한다는 것을 부러워하죠.(웃음)”

    빠듯한 농사일에 하루종일 쉴 틈이 없을 것 같지만, 그는 나름 청춘도 즐기고 있었다.

    “여름에는 오전 일찍 일이 끝나거든요. 여행을 다니거나 친구들과 만나 놀기도 해요. 여자친구랑 데이트도 하고요.”


    ▲젊은 농부, 디지털로 농촌의 가치를 팔다

    농사 시작 후 1년, 비닐하우스를 재정비하고 확장하면서 그의 멜론 생산은 어느 정도 안정화 됐다. 문제는 매출이었다. 생산이 아무리 늘어도 농가에서는 그만큼 이득을 볼 수가 없었다. 시장가격의 흐름에 따라 유통과정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통방식의 변화를 고민했다.

    “멜론이 착과(열매수정) 후 55~60일이 지나야 당도가 가장 높아요. 그때 수확을 해야 맛이 가장 좋죠. 그런데 유통 과정에서 1~2주가 지나버리니깐 대부분 멜론농장에서는 착과 후 40~45일 쯤 수확을 해요. 소비자에게 맛이 없는 멜론이 갈 수밖에 없어요. 또 유통과정이 길어지면 멜론이 썩어버리는 일도 생기죠. 그런데 멜론이 가장 당도가 높을 때 따서 소비자에게 바로 전달하면 농가도 손해가 없고, 소비자도 가장 맛있는 멜론을 먹을 수 있잖아요. 직거래를 결심한 이유죠.”

    그는 농장일을 마치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키운 멜론의 가치를 알리기 시작했다. ‘젊은 농부가 들려주는 신선하고 달콤한 메론 이야기-팜.앤.팜’ 블로그와 SNS를 통해 자신이 키우는 멜론의 일생(?)을 사진과 글로 일일이 기록하고, 농촌의 일상을 공유하고, 판매까지 이어갔다. 그가 애지중지 키운 멜론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고, 그의 블로그에서 판매하는 멜론은 완판이 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기존 농업은 생산에만 집중하는 농업이었다면, 이제는 유통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농업가치를 고객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면 농산물 가격은 적어도 지금처럼 시장가격에 의해 크게 휘둘리지는 않을 거예요. 농산물의 생산과정부터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일관되게 한다면, 소비자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가치에 맞는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현재 생산 멜론의 30%를 직거래로 판매하며, 총 매출의 50%가 직거래를 통한 수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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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우씨가 운영하는 블로그.


    ▲막내 농부, 농촌의 희망을 꿈꾸다

    그는 농사 외에도 동네의 다양한 일을 도맡고 있다. 젊은 피가 턱없이 부족한 농촌에서 20대 막내의 역할은 넘쳐 난다. 마을의 청년회와 작목반에서 동네 일을 돕는 것은 물론이고, 멜론연구회나 의령정보화농업인연구회 활동을 통해 농산물 가공을 위한 실험과 연구에도 열심이다. 지역 강소농 농가들과 함께 공동마케팅을 위한 ‘농부야 놀자 협동조합’도 설립해 농촌의 미래에 대한 선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농촌에서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그게 욕심이었어요. 다들 생계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세요. 젊은 저로 인해 동네 어르신들의 그 걱정이 조금이라도 해결됐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 맞는 분들과 시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요.”

    그가 꿈꾸는 농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모두가 함께 행복한 농촌이요.(웃음) 농부들은 농사를 열심히 즐겁게 짓고, 도시 사람들은 휴식과 재미를 찾아가는 곳이요. 요즘은 작물 생산과 유통, 체험관광까지 연계되는 농촌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에요. 특히 의령이 관광인프라가 부족하잖아요, 농촌을 테마로 문화관광 콘텐츠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요. 동네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먹고사는 걱정 안 하고, 의령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움과 함께 농업의 참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 같아요. 소통하고 변화하는 농촌을 위해 제 젊은 열정과 패기가 도움이 되면 좋겠지요.”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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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군 용덕면 비닐하우스에서 멜론을 재배하고 있는 20대 농부 박태우씨./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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