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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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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환경] (10) 도랑살리기(하) 거창읍 가지리 지내마을

주민이 직접 부들 심고 쓰레기 줍고… “도랑 가꾸니 마을이 깨끗해졌소”

  • 기사입력 : 2013-10-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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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창군 거창읍 지내마을 주민들이 지난 27일 오전 마을 도랑 가장자리에 습지식물인 부들을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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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7일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과수원을 지나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지내마을에 도착했다. 조용해야 할 일요일 오전이지만 마을 주민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이날은 마을도랑살리기운동의 하나인 도랑 습지식물심기를 하는 날이었다. 트럭 한 대가 도랑가에 진흙더미를 쏟자 주민들이 진흙에서 부들 뿌리를 찾아내 심고 있다. 휴경하고 있는 밭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부들을 캐온 것이다. 신라의 첫 마을로 알려진 이 마을은 도랑살리기 초기에 일부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부들심기, 쓰레기 줍기 등으로 도랑이 바뀌면서 마을이 바뀌고 있다.


    ◆도랑살리기운동 매뉴얼

    마을도랑살리기는 보통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진행된다. 환경부는 지난 3월 시·군의 신청을 받아 심사를 거쳐 4월 도랑과 마을을 확정했다. 5월 중순께 마을도랑 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협약을 체결해서 도랑살리기를 시작했다.

    사업 주체가 달라도 매뉴얼은 비슷하다. 도랑이 선정되면 마을 주민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도랑살리기의 취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간담회를 열고, 주민들과 함께 우수마을을 견학한다.

    주민설명회를 열어 우리마을 도랑을 어떤 방향으로 살려낼 것인지를 논의한다. 각 도랑마다 퇴적물의 양과 범람의 유무, 물길 방향과 오염 정도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 마을의 지침을 정해 마을에서 단속할 행위를 정하고, 벽화조성이나 꽃길 만들기 등 마을 환경을 바꿀 방안도 함께 논의된다.

    계획이 수립되면 본격적으로 물길을 내고, 습지식물을 심는 동시에 불법 쓰레기 투기·소각 등을 금지하고 분리수거를 실천한다.

    도랑을 정비하면서 주민들의 쉼터가 될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고 공사에 들어가면 마을 정비가 완료될쯤 공사도 끝난다.

    마을 쉼터가 문을 열고 도랑살리기 운동의 성공을 자축하는 마을 잔치가 벌어진다.

    이 운동이 순조롭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시기가 중요하다. 도랑살리기 마을은 주로 농촌 마을로 4~5월께 예산이 내려와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될쯤에는 농번기라 주민들이 바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랑살리기사업을 진행하는 단체는 농한기인 1월께 예산이 편성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창 지내마을 사례

    거창군은 거창스포츠파크 뒤편에 하수처리장과 분뇨처리장, 가축분뇨 공공처리장 등을 한데 모았다. 여기서 한 번 정화된 물은 거창군 생태공원과 양항제 생태습지원으로 흘러들어 두 차례 자연정화를 거친 다음 황강으로 유입된다.

    황강의 맑은 물이 유지될 수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거창군은 사과재배농가가 많은 황강 상류지역 도랑이 농약 잔여물과 쓰레기 등으로 오염되면 근본적인 수질개선이 어렵다고 봤다. 그래서 올해 낙동강유역환경청, 한국수자원공사와 협약을 맺고 황강 유역으로 유입되는 도랑 5개를 집중적으로 살려내기로 했다.

    거창군 녹색환경과 강신헌 수질관리담당은 “실질적 수질 개선 효과를 보기 위해 지난해 클린에코마을사업을 하면서 5개 마을의 도랑을 살린 데 이어 올해도 5개 마을도랑살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며 “도랑살리기운동과 습지조성계획이 어우러지면 지금보다 더 물 좋은 거창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내마을은 ‘푸른황강·맑은합천호 만들기를 위한 거창군 도랑살리기 운동’에 올해 선정된 5개 마을 중 늦깎이로 들어왔다. 124가구가 거주하는 이 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뒷산인 건흥산 자락에서 사과를 재배한다. 대규모로 과수재배를 하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노령인구가 많아 이 마을은 상류인 사과밭 주변 도랑에서부터 농약병을 마음대로 버리거나 쓰레기를 태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과재배에 도랑물을 끌어쓰는 경우도 있어 건천화가 되면서 쉽게 오염이 될 소지도 있었다. 개선이 시급한 지점이었는데도 주민들은 올해 초만 해도 도랑살리기 운동을 원하지 않아 환경부에서 지정하는 거창군 도랑살리기 마을에서는 제외됐다. 그러다 5월께 한국수자원공사 합천댐관리단에서 마을도랑살리기를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지내마을이 추가로 선정됐다. 주민들을 한 번에 설득하지 못했지만 마을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은 주민들은 뒤늦게 적극적으로 도랑살리기에 나섰다.

    지난 7일 주민 80여 명이 도랑살리기 우수마을인 산청군 수철마을로 견학을 다녀와 운동에 불이 붙었다. 이 때문에 대부분 도랑가 습지식물을 심을 때 조경업체가 와서 하는 것과는 달리 지내마을 주민들은 직접 부들을 채취해 심었다. 가을걷이가 한창이라 일하는 할아버지들을 대신해 나온 할머니들은 평균 연령이 70대 후반이었지만 15명 모두 흔쾌히 작업에 동참했다.

    열여덟에 지내로 시집을 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염기분(84)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서 우리집 농사일도 못하는데 우리 마을이 깨끗해진다니까 부들을 심으러 나왔다”며 “힘들지만 이렇게 해 놓으니까 뿌듯하고 보기가 좋다”고 말했다.

    ◆달라진 지내마을

    주민 참여로 도랑살리기가 속도를 내고 있다. 군에서 실시하는 하천정비사업과 연계해 300m가량의 도랑에 물길을 내면서 여울을 복원한 데 이어 하류 부근에 습지식물을 심었다. 상류에는 창포를 심을 계획이다. 수변 쉼터가 들어설 터도 고르기 작업을 마쳤다.

    마을도랑살리기 주민실천서약을 하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겠다 다짐하고 직접 청소를 하니 도랑 주변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말끔해졌다.

    마을 회관 왼편에는 일반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는 창고가 생겼으며 비닐도 태우지 않고 따로 모으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모임을 갖고 도랑살리기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토론했으며 곧 군의 도움을 받아 마을 대청소를 할 계획이다.

    깨끗해진 도랑을 지키는데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주민들은 스스로 환경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마을 전체가 살기 좋아졌다고 말했다.

    지내마을 이장 박경국(59) 씨는 “어릴 때 도랑에서 가재랑 장수풍뎅이 잡느라고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점차 더러워져서 아쉬웠다”며 “도랑살리기 이후 주민들이 ‘마을을 깨끗하게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환경은 뒷걸음질 치는 게 좋은 것 아니겠냐”며 “우리 마을이 환경은 1960년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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