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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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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지역이기(地域利己)와 조삼모사(朝三暮四)- 허충호(논설실장)

조삼모사에 등장하는 도토리를 공공기관으로 본다면…

  • 기사입력 : 2013-05-3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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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3일 오전 11시, 3단계급 태양흑점 폭발이 있었다. 흑점 폭발은 1~5단계로 분류되니 중간 단계다. 머나먼 곳에 있는 태양의 흑점이 폭발한 게 무슨 큰일이냐고 한다면 무지한 소리다. 그 영향이 결코 만만찮기 때문이다. 통신장애는 물론 발전소가 피해를 보기도 한다. 항공기 무더기 결항 사태도 있을 수 있다. 멀리 있다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존재가 태양이고, 태양의 움직임은 인류의 삶과 직결된다. 최근 도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에피소드들도 이와 같다.

    지난 4월 23일 창원시의회가 창원시청 소재지 관련 조례를 의결했고, 시는 15일 공포했다. 3년 가까이 끌어온 시청소재지 논란은 이로써 종지부를 찍었다. ‘마산’으로서는 가히 흑점 폭발의 ‘변고’다. 시청을 가져와 한때 7대 도시의 명성을 되찾고 실추된 시민의 자존심을 되살리려는 기대는 좌절됐다. 마산지역 의원들이 발끈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서 청사 소재지 결정 조례안 원천무효를 촉구하고 ‘조례 무효 확인 소송’을 법원에 제출할 방침이라며 반발수위를 높이고 있다. 급기야 지역구가 마산인 이주영 국회의원까지 가세해 통합창원에서 구 마산을 다시 분리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창원 마산 진해 3시 통합에 앞장섰던 인물임을 상기하면 입맛이 씁쓸하다. 아니, 까끌까끌하다.

    흑점은 또 다른 곳에서도 터졌다. 경남도가 창원시내 공공기관 일부를 진주 등 서부권으로 옮기려는 계획이 그런 유다. 이번에는 구 창원권 주민들이 발끈했다. 창원 봉림동을 중심으로 한 ‘공공기관 이전 반대 창원시민대책위원회’는 이를 ‘경남의 균형발전이 아닌 하향평준화’로 단정했다. 10만 서명운동과 함께 도지사 퇴진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도지사가 도청 마산이전을 공약해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는 마당에 자기 지역 내에 있는 공공기관 이전문제까지 수면 위로 부상했으니 이해(利害)선상 주민들이 반발하는 것은 예견된 일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지역갈등을 조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갈등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 맞는 단어다-혼자 한다면 고민이니 갈등이 맞다. 그렇다면 갈등 상대자는 누구일까. 당연히 서부권 경남이다. 필자가 지인들을 통해 진주지역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봐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속된 말로 “있는 사람이 더 한다”는 반응이다. 도청, 경찰청, 법원, 검찰청을 비롯해 각종 도단위 행정기관들이 포진해 있고 주요 산업단지까지 가세해 가질 것 다 가진(?) 창원이 도 단위기관 몇 개 이전하는 것을 두고 그리 호들갑 떨 것까지 없지 않느냐는 투다.

    문득 조삼모사(朝三暮四) 고사가 생각난다. 송나라의 저공이라는 사람이 원숭이를 좋아해 많이 키웠다. 점차 원숭이 수가 많아져 식량 대기가 벅차지자 그간 주던 도토리의 수를 줄여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조삼모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아우성치며 반발했다. 저공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로 수정제안하자 원숭이들이 박장하며 받아들였다는 고사다. 도토리의 합은 결국 7개인데도 말이다. 이 고사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다. 원전해석부터 본다면 감언이설로 상대를 속여 실리를 추구하는 교활함을 일컫는다. 필자는 추가 재원(노력)을 투입하지 않고도 현명하게 상대를 설득해 결국 이해를 끌어내는 협상력으로 이해한다. 극과 극의 해석이지만 이랬든 저랬든 도토리의 합은 7이다.

    그럼, ‘지역이기(地域利己)와 지역 자생력 강화는 같은 말일까 다른 말일까? 제삼자에게는 다른 말이지만 이해 당사자에게는 같은 말이다. 조삼모사에 등장한 도토리를 공공기관으로 보고 이해당사자를 경남으로 가정한다면 도토리의 합은 결국 일곱이다. 경남으로서는 손해볼 게 없는 게임이지만 이해당사자에게는 ‘4와 3’의 이분법으로만 들린다는 데 문제가 있다. 경남이라는 ‘일곱 개의 도토리’보다는 작은 단위의 생활구역이 전제가 되는 것이니 그 합은 분명 일곱이 아니다. 이러니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갈등천국’이라고 비판만 할 일은 아니지만 잘한다고 할 일도 아니다. 시시비비는 따지되 발전적 대안도 필요하다. 조삼모사의 고사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할 묘안을 찾아야 한다.

    허충호(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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