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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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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73) 황강 21 합천군 대양면~해인사 소리길

물소리, 바람소리… 계곡 따라 세월의 소리가 흐른다

  • 기사입력 : 2012-07-1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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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인사 소리길은 속세에 찌든 마음을 씻어내고 깊은 사색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 해인사 소리길을 따라가다 보면 청아한 계곡물 소리가 들리는 홍류동 계곡을 볼 수 있다.
    대동사지석조여래좌상(왼쪽)과 백암리석등.
    해인사 소리길의 농산정.
    홍류동 계곡.
    백암리석등에 새겨진 복련.
    목재데크로 새롭게 단장한 해인사 소리길.



    장마철이라 하지만 한 줄기 소낙비가 뿌리고 지나간 하늘은 흰 구름이 피어올라 가을 하늘만큼이나 맑고 높았다.

    옛날부터 소서가 지나면 농촌은 출수기이다. 의령을 거쳐 합천으로 가는 길의 농촌은 행복한 어울림으로 나타났다가 스쳐가기를 반복했다.

    농업은 농자지천하지대본이라 했다. 조선 후기 헌종 때 정학유가 농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는 농가월령가에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뿐이로다”라고 했다. 농촌 들판 길 위에서 만난 농민은 막걸리를 한잔 건네며 지금은 농약과 화학비료로 옛날보다 손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농사는 땅을 죽이고 자연을 죽이는 것이라며 자연에 순응하며 공생하는 농법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했다.

    진짜 농군이라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다며, 그것은 ‘무농약’, ‘무제초제’, ‘무화학비료’라고 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농약을 쓰지 않으려다 보니 메뚜기와 각종 병해충이 들끓고, 제초제를 쓰지 않으니 사흘이 멀다 하고 김매기로 허리 펼 날이 없고, 비료를 쓰지 않으려다 보니 유기농 퇴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3무의 원칙을 지키며 농사짓는다는 것이 엄청난 고통이겠으나 진짜배기 농사꾼이요,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수고를 수고라 여기지 않을 것이라 했다. 우리가 공존하며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백암면 상촌마을회관 건너편엔

    연꽃 무늬 새겨진 석등과 불상이…


    넓은 산성산 정상부

    벽계산성 혼적 곳곳에


    해인사 가는 길의 홍류동 계곡

    최치원 선생 이야기 전해져


    계곡 6㎞ 이어진 해인사 소리길

    자연과 교감하는 깨달음의 길



    <합천백암리석등·대동사지석조여래좌상>

    길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을 따라 이어진다. 의령군 봉수면 신반천을 곁에 두고 대한로 따라 가다 합천군과 의령군의 군계를 지나면 폐교가 되어 추억을 담고 있는 대야초등학교 백산분교가 있다.

    여기서 상촌길을 따라 벼가 자라고 있는 들판 사이로 가면 백암면 상촌 마을이다. 마을회관에서 건너편 200m쯤 되는 느티나무 옆에 보물 제381호 합천백암리석등과 경남유형문화재 제42호 대동사지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이 지역은 속칭 백암사지 또는 대동사지라 전하는 곳인데 지금도 주변 농경지에서 기와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곳 석등의 형태는 우리나라 기본형인 팔각 석등인데 상륜부는 없어졌다. 나머지 다른 부재는 거의 완전하며 석등의 아래쪽 하대석에는 화려한 단엽의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을 새겼다.

    불을 밝히는 화창의 사면에는 동서남북 사방에서 부처의 법을 지키는 네 수호신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어 화사석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최상부의 옥개석은 낙수면이 평평하고 얇으며 합각이 뚜렷한 신라시대의 전형적 양식을 하고 있다.

    대동사지석조여래좌상은 석등의 옆에 함께 보존되어 있다. 8각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이 불상은 얼굴 부분의 마멸이 심하다. 머리 부분은 높이 솟아 있으며 불상의 양어깨를 덮은 법의를 걸치고 있다. 넓게 트인 가슴은 가사로 가리고 있으며 상체를 흘러내린 옷주름은 무릎을 감싸고 있다. 불상의 손 모양을 보면 오른손은 밑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여 있어 절집의 주불인 항마촉지인을 나타내고 있다. 불상이 앉아 있는 좌대는 상·중·하대를 갖추고 있으며 위쪽에는 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 모양의 무늬가 있다.

    중대의 8면에는 각각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상을 새겼고 하대에는 연꽃잎이 밑을 향한 복련이 표현돼 있다. 불상의 일부를 시멘트로 보수했으나 근처에 있는 석등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됐을 것이라 추측된다.

    현재 불상이나 석등의 위치는 원래의 장소가 아니고 옮겨 온 것으로 여겨지며 문화재 앞에 붙여진 지명이 서로 다른 것이 의문이다. 석등과 불상 옆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지킴이 역할을 하며 말없이 세월을 버티고 있었다. 상촌마을 회관 앞에서 마을 촌로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대동사지에 있는 느티나무는 둘레 5.5m, 높이 약 40m, 수령 약 1000년으로 백암사 고승이 심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느티나무가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기 전에 꼭 이상한 소리를 낸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마을에서 당산으로 보호하고 있다.


    <산성산 벽계산성·합천 해인사 소리길>

    백암리 석등에서 나와 지방도로 1011번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의령군 궁류면이다. 의령군 궁류면도 옛날에는 내 고향 쌍치만큼이나 첩첩 산골이었지만 지금은 시원하고 깨끗한 청정지역 휴가지로 유명해졌다.

    여름에는 인근 휴가지에 사람들로 붐빈다. 의령에 한쪽을 기대고 있는 산성산(해발 741m)은 합천군 쌍백면 외초리와 의령군 궁류면 벽계마을에 걸쳐 있다. 의령읍에서 가회면을 거쳐 자굴산 방향으로 여정을 잡으면 산성산 벽계산성 가는 길이다.

    지금은 벽계산성 흔적을 찾는 사람보다 산성산을 등산하는 사람이 더 많다. 산성의 축조 시기는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산의 정상부는 비교적 폭이 넓은 대지로 되어 있으며 성터의 흔적은 토성과 석성의 형태로 남아 있으나 찾기가 쉽지 않다. 토성은 내성, 석성은 외성으로 추정되며 성벽 위는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에 봉화대로 사용됐다고 전한다. 산성산을 내려와 시원한 벽계계곡에서 땀을 식히고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대한로를 따라 이름도 재미있는 아홉사리재를 넘으면 대양면 소재지이다. 대양면 사무소를 지나 시원스럽게 뚫려 있는 4차로 국도 33번 합천대로에 오르면 이내 들판 사이에 유유히 흐르는 황강을 가로지르는 합천대교가 반겨준다.

    합천읍내를 거쳐 합천대교를 건너 국도 24번으로 방향을 바꾸어 묘산면과 야로면 사무소를 지나면 국립공원 합천 해인사구역이다. 해인사는 창원에서 지도를 보면 삼각형의 꼭짓점에 있는 모습이다.

    해인사로 가는 길을 나설 때마다 어느 길을 이용할지 행복한 고민을 잠시 한다. 해인사는 우리나라 3보 사찰 중의 하나로 고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 사찰이다. 세계 문화유산의 보고이며 한국불교 사상의 중심지이다. 산을 좋아할 때는 매화산과 가야산을 즐겨 찾아왔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사랑할 때는 해인사를 찾아왔었다. 정조 때 문인 유한준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고 말했다.

    또한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말했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인사를 찾아오면 넓은 마음에 안기는 듯하다.

    해인사 초입의 홍류동 계곡은 최치원 선생이 노년을 지내다 갓과 신발만 남겨 둔 채 홀연히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 곳이다. 걷기 열풍을 타고 2011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을 맞이하여 계곡 6km 길을 7개의 다리와 500m의 목재데크로 새롭게 단장해 해인사 소리길로 조성했다.

    대장경테마파크에서 해인사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홍류동 계곡은 가을 단풍이 매우 붉어서 흐르는 물조차 붉게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해인사 소리길의 현상적인 의미는 우주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이며, 언어적으로는 나와 가족, 사회 민족이 화합하는 소통의 길이자 우리가 추구하는 완성된 세계를 향해 가는 깨달음의 길이며,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세월 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여 새롭게 명명됐다.

    이러한 소리길은 속세에 찌든 마음을 씻어내고 깊은 사색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 잘 닦여진 해인사 소리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청아한 계곡물 소리가 따라나선다.

    계곡은 지척에서 걷고 있는 옆사람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로 변했다가 이내 천년 노송과 어울려 솔바람처럼 잦아들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또한 홍류동 계곡은 천년 세월의 무게가 녹아 있는 합천 8경 중 3경인 동시에 가야산 19경 가운데 16경까지를 모두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한참을 걷다 보면 바위와 절벽 곳곳에 새겨진 글자들이 눈에 띄며, 홍류동 계곡 가운데 풍치가 가장 빼어난 농산정은 최치원 선생이 이곳의 풍광에 빠져 신선이 됐다고 전하는 곳으로 곳곳에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다. 소리길의 끝은 해인사로 통한다.

    (마산제일고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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