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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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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64) 황강 12 거창군 신원면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나간 역사 현장엔 깊은 슬픔이…

  • 기사입력 : 2011-10-1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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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강으로 흘러가는 신원천.
    거창사건추모공원 내 추모탑.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라고 한다. 그래도 계절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어김없이 변하고 있었다. 길을 나서면 계절 따라 아름다운 자연의 행복한 어울림이 이어진다. 계절 따라 피는 야생화가 정원을 이루고 있는 산자락을 벗어나면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풍요로운 들판이 마음까지 넉넉하게 해준다. 길을 비켜선 숲에서는 마실 나온 다람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겨주고 나비들의 현란한 날갯짓들이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가을에 길을 나서서 어김없이 변하는 자연을 만나보면 행복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거창의 마지막 답사 길은 오지로 알려진 신원면 과정리로 향했다. 합천군 대병면에서 황매산 자락을 따라 떡갈재를 넘으니 한적한 길가에 한창 활짝 핀 코스모스가 반겨주었다. 가을 여행길에 서정을 달래주는 것은 울긋불긋 아름다운 색깔로 반겨주는 코스모스만 한 게 없다.


    거창사건추모공원 묘역.
     
    거창사건추모공원 내 교육관.

    거창사건추모공원 추모문.


    거창사건추모공원

    산청군 차황면 장박리를 거쳐 작은 고개 밀치를 넘어가면 처음 만나는 것이 흰 페인트로 ‘탄양 학살현장 1951. 2.’이라고 쓴 빛바랜 자연석이다. 몇 걸음 옮기면 1951년 2월 10일 국군이 주민 100명을 탄양골에서 학살했다는 안내판과 추모비가 있고 부근에 총 부지면적 16만2000여㎡(4만9133평)의 거창사건추모공원이 있다.

    신원면 과정리는 많은 사람들이 거창의 불행한 사건으로 알고 있는 거창양민학살사건의 현장이 있는 곳이다. 1951년 2월 10일 한국전쟁 중 신원면에서 일어난 거창양민학살사건은 1995년 12월 18일 국회에서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통과해 1998년 합동위령사업을 시작해 2004년 추모공원을 지어 완공함으로써 반세기가 넘어 국가가 잘못을 인정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거창문화원에서 발행한 ‘거창 명승지의 역사와 전설’(2008)에 따르면 신원면의 양민학살사건은 1951년 2월 9일 신원면 덕산리 청연골에서 시작됐다. 민가 78채가 불타고 주민 84명이 숨졌는데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생존자 5명이 당시의 정황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2월 10일 통비분자를 색출한다며 과정리, 중유리, 와룡리, 주민들을 신원초등학교로 집결시켰다. 와룡리 주민 100여 명을 집결지로 데려오는 도중 대현리 탄양골에서 집단 사살했다. 2월 11일 날이 밝자 군인·경찰·공무원 가족만 가려낸 다음 517명을 과정리 박산골로 끌고 가서 무차별 사격하고 죽은 시체 위에 솔가지를 덮고 휘발유를 뿌린 다음 불을 질렀다. 다른 지역에서도 주민 18명이 학살을 당하는 등 ‘일부 미련한 국군’에 의해 총 814가구의 1583채가 불탔고 719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어린이, 부녀자, 노약자였다. 1951년 2월 11일 신원면의 하루는 그렇게 무참하게 저물어갔다.

    비석 받침대 위에 비스듬히 걸쳐져 있는 박산 합동묘지 위령비.

    박산 합동묘지. 이곳에는 어른남자·어른여자·아이의 유골이 세 곳에 나눠 묻혀 있다.


    속절없는 세월은 흘러갔고 우여곡절 끝에 1954년 신원면 주민들은 박산골에 방치돼 있던 학살현장의 유골을 수습했다. 누구의 유골인지 구분할 수 없어 어른남자, 어른여자, 아이로만 구분해 뒷산에 묻었다. 1960년 5월11일 박산 합동묘역 석물 운반 작업 중에는 분노가 폭발한 주민들이 면장을 살해하는 또 다른 비극이 생기기도 했다.

    1960년 11월 18일 신원초등학교 옆 언덕에 남자합동지묘(109구), 여자합동지묘(183구) 두 개의 봉분을 만들고 아이들 유골(235구)은 봉분 없이 소아합동지지라고 표지해 두었다. 1961년 5·16군사정부는 박산합동묘지의 개장명령을 내리고 묘역에 세운 위령비는 글자를 정으로 쪼아서 뭉갠 다음 땅에 파묻어버렸다. 1987년 민주화의 열풍이 불자 유족회는 땅속에 묻혀 있던 위령비를 꺼내 비석 받침대 위에 걸쳐 놓았다. 박산골 합동묘소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추모공원이 조성돼 있다. 거창사건 추모공원은 추모문, 천유문, 위패봉안각, 위령탑, 부조벽, 묘역, 조각, 역사교육관 등이 있다.

    거창양민 학살사건은 거대한 추모공원보다 박산골 합동묘역과 지금도 비스듬히 쓰러져 있는 깨진 위령비가 불행했던 한 시대의 역사를 더욱 마음 아프게 떠올리게 했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며 유족들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바라며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감악사지 부도


    감악사지 부도(승탑)

    신원면 소재지로 나와 늦은 점심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식당을 찾았지만 사람들의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과정2교 갈림길에서 번덕마을 방향으로 가면 마을 입구에 감악사지 부도 2㎞라는 이정표가 있다.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목장이 나오고 흰돌 기도원 이정표가 감악사지 부도를 찾아가는 이정표를 대신한다.

    고갯마루를 넘어가다 차를 세우고 밤나무에 기대어 멀리 보이는 박산골 현장을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밤 한 톨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머리를 들어보니 떡 벌어진 밤송이에서 금방이라도 잘 익은 밤이 또 떨어질 듯 매달려 있었다.

    좁은 산길을 따라 고개를 넘으니 단정한 모습의 부도가 보였다. 고려시대 양식인 팔각원당형으로 감악사지에 있던 것을 1984년 흰돌 기도원이 건립되자 1987년 마을 주민들이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부도(근래는 승탑이라고 함)는 스님들의 사리와 유골을 봉안하는 무덤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승탑은 8각으로 처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팔각원당형 부도의 형태가 정립된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였다. 이 승탑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래 받침돌의 옆면에 코끼리의 눈을 형상화한 안상을 얕게 새겼으며, 윗면에는 용과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마다 꽃으로 조각해 돌출시켰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신라시대에 감악조사가 절을 짓고 수도했다고 한다.


    신선폭포


    신선폭포

    감악사지 부도에서 산길을 따라 내려와 맑은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합천 방향으로 나서는데 신원면장이 세운 작은 안내판이 발길을 붙잡았다. 한적한 길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읽어보니 거리가 600m라고 했다. 보통 산에서 600m라고 하는 것은 구불구불한 길을 실제 잰 것이 아니고 지도에서 직선으로 계산한 것이다. 그래서 보통 등산로 이정표에는 거리보다 소요시간을 표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점심이 늦어 시장기가 있었지만 이 깊은 산골에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원래 예정에 없던 신선폭포를 찾아 나섰다. 숲이 우거져 있는 원시림 산길에는 쉴 수 있는 긴 의자도 있고 가파른 오르막길에 철제 사다리를 놓은 것으로 보아 신원면에서는 꽤 유명세가 있는 곳인가 싶었다. 30여 분을 걸으니 감악산 남녘의 상감악 마을 위 계곡에서 발원한 샘물이 90m의 화강암 벽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어느 달 밝은 보름밤, 여섯 신선이 홀연히 나타나 폭포수에 목욕하고는 이곳에서 백일째 기도하던 감악대사에게 이르기를 “북쪽에 큰 절을 세워 만인의 도량이 되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이에 대사는 크게 깨달음을 얻어 현재의 연수사 자리에 불사를 일으켜 큰 절을 세우고는 그때까지 상감악의 작은 암자에 모셨던 부처님을 그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이후에도 매년 정월 대보름날 자정이 되면 신선이 나타나 목욕하고 쉬어 가는 곳이라 하여 신선폭포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TIP. 맛집

    ▲꽃피는 산골 : ☏ 055)943-2203. 김선영. 거창군 신원면 구사리 1462. 안심스테이크 3만원, 햄버거스테이크 1만5000원, 돈가스 1만원. 통나무 건물 2층에서 보이는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마산제일고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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