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2) 산청 대원사굽어진 돌계단서 죄 짓는듯 걷는다
갈 수도 있었던 길 - 산청 대원사에서
방장산 계곡 물소리를 업고 걸었다 굽어진 돌계단 입구를 들어서니 어쩌자고 절 마당에 파쇄석을 깔았을까 어지러운 생각 마냥 적요 깨는 발소리 죄 짓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대웅전 뒤편 언덕 홀로 앉은 저 비구니 함께 출가 맹세했던 그날의 단발머리, 아닌 줄 알지만 힐끔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서둘러 합장하...2021-03-04 20:52:50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1) 창원 동판저수지흘러가야 할 것들은 흘러가고 머무는 법이 없었다
네가 나를 늪이라 부를 때
흘러가는 구름을, 강물을, 바람을, 동경하였다
그것들을 담아두려고 아니, 가두려고
스스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흘러가야 할 것들은 흘러가고 머무는 법이 없었다
갇힌 건 아니, 가둔 것은 썩고 문드러져
마침내 제 처음을 잊어버린 늪뿐이었다
나의 늪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인 것 같아도
한순간도 같지 않았...2021-02-18 21:13:28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0) 창녕 만년교온갖 시련 무심히 흘려보내는 보살 같은 다리
만년교
이름값 하기에는 아직 구천 수백 년이 모자라는
지나온 만 번 보다
다가올 수십만 번 더 무거운 짐을 감내해야 하는
보살 같은 다리가 있다
시대의 불의에 죽음으로 맞선 이들
가난을 홑지팡이에 의지한 채 절뚝이던 이들
목말 태우고 건너주느라
이제는 곱사등이가 되어
이끼마저 저승꽃처럼 핀
꿈을 건네준다 해서 더러는
무...2021-02-04 20:35:04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9) 고성 갈천서원세상 사는 일, 다 칡넝쿨 같아서…
갈천(葛川)
세상사는 일이야 다 칡넝쿨 같아서
구름은 구름길을 가고요
시냇물은 시냇물대로 제 물길을 가지요
세상사 다 그 이어짐도 칡넝쿨 같아서
아버지의 말씀이 그 아들에게
어머님의 말씀이 그 딸에게
구름이 구름길을 가듯이
시냇물이 그 물길을 이어 가듯이
푸르고 푸른 넝쿨 이어가는 것 아니겠어요
한 세상 청산(靑山)에 묻혔다 해도
그 속에...2021-01-21 20:04:30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8) 거창 수승대거북등 올라 술상 받고 구름이 흘려놓은 시 구워 먹으리
구시가(求詩歌)
온몸에 시를 갑주(甲胄)로 두르고서
잔뜩 도사린 채
또 무슨 시를 기다리는가
단 한 편의 시도
아니, 한 구절조차도
내어놓지 않을 태세
허나 오늘만은 기필코
네 몸에 두른 시 한 편 받아 가리니
거북아 거북아 시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네 등허리에 올라 술상을 받아놓고
바람이 실어온 시 한 편은 술잔...2021-01-08 08:03:35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7) 마산 서원곡 관해정아름드리 은행나무 목 늘여 바다를 본다
관해정(觀海亭)
큰 뜻을 품는다는 것은
바다를 바라보는 일
바위에 부딪혀 돌고 도는 개울물이
새 떼 소리처럼 때로 천둥소리처럼
숲속 계곡을 들썩인다
노란 은행잎 하나 놀라서 떨어지고
잔 띄워 시를 읊던 선비여
금잔이 굽이치거늘 무엇하는고
아름드리 은행나무 목을 늘여 바다를 본다
엄마 품 같은 두척산 옹달샘
새벽을 여는 기침 소리
시서(詩書) 강...2020-12-15 07:59:41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6) 하동 쌍계사 일주문하루를 한 시간에 사는 저 붉음의 뜨거움이라니
쌍계사 단풍
마크 트웨인은 인간만이 얼굴을 붉힐 줄 안다고 했지만
盛夏의 푸르름과 열병을 삼킨 속앓이가 얼마나 컸으면
저리도 붉은 마음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걸까
부끄러움은 장미보다 강렬한 매혹의 홍조를 띤다는데
적당히 아는 척 어수룩한 코로나 파시즘 우산 아래
정의와 공정의 이파리들이 측은지심을 흔들고 있다
감히 손을 댔다간 늑골 아래 큰 상흔을 ...2020-12-01 08:01:46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5) 산청 남사예담촌 부부 회화나무내 휘우듬한 허리 안아주던 이, 당신이었나
그래요, 당신
당신이었나
기울어가는 어깨를 받쳐주고
휘우듬한 허리를 안아주던 사람
당신이었을 것이다
내 눈물이 적신 무명옷자락으로
팔베개 내어주던 그 온기는
당신이어야 한다
살아있다는 나의 기척을
멀리 혹은 가까이서 살필 눈길은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영영 눈 감는 그날
꽁꽁 언 내 손 잡아줄 한 사람
그래, 당신이다
몇 백 년이 ...2020-11-17 08:03:52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4) 함안 이수정화가도 물감도 담지 못하는 바람의 자화상
햇살이 세필로 그린 바람의 자화상
까칠한 맨살의 바람
저 질감은 필시
화가의 솜씨가 아니다
수시로 변하는 풍광도
괴산재 앞마당 뒹구는 낙엽도
물감의 혈색이 아니다
숙성 잘된 수정과
계절에 젖 물린 이수정
무진한 저 맛도
사람의 입맛이 아니다
그러니 그냥 걷자 말없이
홍예교 지나 영송루가면 보겠다
...2020-11-02 21:20:51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3) 고성 연화산 옥천사 일주문(경상남도 기념물 제140호)이름 없이 가뭇없이, 피안으로 드는 길은 아득하여라
그승
피안으로 드는 길은 아득하여라
이승 넘어 그 너머에
저승이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 그승에는
첩첩 알 수 없는 골과 골이 있어
꽃 피었다 지는 그 사이가 있어
마음 하나 올곧게 세워 한 평생
앞만 보고 걸어도 발밑은 늘 허방이어서
세상은 뜬구름 같기만 하였어라
빛의 그늘만 같았어라
그승,
바람의 집 한 채 품은 그곳에 들어
이...2020-10-19 21:48:29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2) 산청 ‘전 구형왕릉’(대한민국 사적 제214호)사라진 가락의 뒷모습, 돌무덤으로 남았네
풍장風葬
누가 당신 이름 앞에 비운이라 써놓고
아직도 돌무덤에 가두어 두고 있는가
화개골 끝 지나, 당신
천화遷化*의 길 떠난 지 오랜데
풀씨 하나 품지 못하는 일곱 계단 행간
천오백 년의 전설 위에 무얼 더 얹으려
그늘에 잠든 당신을 호명하는가
어깨걸이 느슨한 막돌들의 폐허 위로
물증은 허물어지고 심증만 쌓이는데
역사의 무대에서 퇴...2020-10-05 21:15:39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 고성 서비정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3-1-6호)나는 책속에 묻혀 詩속에 숨어 산다네본지는 기획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를 이번 주부터 2주에 한 번씩 연재한다. 이번 기획은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후속으로 김관수 사진작가의 사진에 문학운동단체 ‘하로동선’ 동인들의 시를 입혔다.
현재 경남사진학술연구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관수 사진작가는 ‘늪’, ‘공즉시색- BALI’, ‘비감비경’, ‘경남국제사진페스티벌 도록’ 등 다수의 사진집을 발간했고, ‘하로동선’은 도내 중진작가들이 중심이 된 문학단체로 지금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도내 구석구석 역사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명소를 마음을...2020-09-21 20:50:49